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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블랙리스트 다룬 <그알>, 김규리의 눈물과 김제동의 사이다

너의길을가라 2017. 9. 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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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던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군가는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고요. 제 삶, 제가 열심히 살고 있는 틈 사이사이에서 왜곡했어요. 계속 저를. '너 아직도 안 죽었니? 응? 아직도 안 죽었어? 왜 안 죽었어? 죽어, 죽어, 죽어 하니까.. 시도를 했죠.


지난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은밀하게 꼼꼼하게 -각하의 비밀부대' 편을 지켜보면서 또 한번 참담함에 몸서리를 쳤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인터뷰를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쉽사리 위로의 말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무려 10년이었다. 배우 김규리가 악랄하고 지독한 '악성댓글'에 시달린 시간 말이다. 지난 2008년 5월이었다. MB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가 협상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열었고, 김규리는 자신의 SNS에 이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전체적인 맥락은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불통을 지적하고, 검역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자 목소리를 놓이는 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길었던 글의 한 부분,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채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부분만 부각됐고, 이 비유적 표현이 확대 왜곡돼 그를 10년 동안 괴롭혔다. 김규리 스스로 '젊은 치기에 쓴 글'이라 밝혔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끔찍했다. 


"이 글 때문에 있었던 일을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는 김규리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눈물을 쏟아냈다. 당시의 소회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처참한 일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그는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그 다음 날인데 저는 그때 엄마 보러 갔어요. 우리 가족들 오랜만에 성묘 갔어요. 성묘 갔는데, 오랜만에 엄마 보러 갔는데 사람들이 저를 막 욕하는 거예요." 얼마나 맺힌 상처가 크고 깊었을까. 도대체 그는 왜 그토록 욕을 먹어야 했던 것일까. 


이유는 허탈하게도 '몇 자 되지도 않는 문건' 때문이었다. 이른바 'MB 블랙리스트'라 불린 그것 말이다. 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 · 연예계 인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명단을 작성했다. 이 리스트에는 문화계 6명, 배우 8명, 방송인 8명, 가수 8명, 영화인 52명 등 82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정원은 이 명단을 토대로 전격적인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방송 출연을 제한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해 활동에 불이익을 준 것이다. 자연스레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이들은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김구라, 김미화, 김장훈, 김제동, 김하늘(가수), 명계남, 문성근, 박찬욱, 봉준호, 故신해철, 유준상, 윤도현, 이외수, 이준기, 이창동, 조정래, 진중권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규리와 함께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김미화는 '예능에서 불러줘야지 원.."이라며 농담으로 말문을 열더니, "짐작은 하고 있었잖아요, 우리 모두. 무슨 일인가 있었을 거다 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고.. 지난 9년 사이에 희한한 일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던 거예요."라며 자신에게 있었던 의문스러운 일에 대해 털어놨다.



김미화가 8년 동안 진행했던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는 청취율 1위를 놓치지 않았을 만큼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하차를 선언하게 됐는데, 그에 대해 김미화는 윗선의 압박 때문이라 털어놨다. "본부장님이 미화 씨가 시사프로그램 맡는 거는 원치 않으신다. 김재철 사장님께서 요새 라디오가 좀 시끄럽던데.."라는 이야기를 당시 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의혹'으로 남았던 것들이 결국 '블랙리스트' 문건이 확인되면서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모르겠다."고 전제한 그는 "저 보고 좌파래요."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을 토로했다.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어려운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그리고 제가 코미디언이니까, 그분들과 함꼐 웃고 운 게 왜 죄입니까?"라고 말하는 그는 '반정부 세력'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코미디언'이었을 뿐이다. 국정원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활동을 막아 생계에 타격을 주는 국가라니. 정말 참담하다는 말도 부족하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 김상중의 말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지난 9년동안 일상처럼 존재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권력도 끝내 지고야 말았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오만했던 권력은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하는 '진실' 앞에 발가벗겨지기 시작하고 있다. 



"가서 똑똑히 전해주라. 당신 임기, VIP 임기는 4년 남았지만 내 유권자로서의 임기는 평생 남았다."


이제 남은 건 부지런히 손발 역할을 했던 국정원을 넘어, 대선 개입을 비롯해 여론 공작과 언론 장악을 시도했던 프로젝트의 정점에 있었던 그 사람, '이명박'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현재 속속 드러나고 있는 모든 적폐의 중심에 그가 있다는 것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지 않은가. 지난 9년, 저들은 참으로 성실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김제동의 말처럼, "그들은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은 늘 국민에게 있고 (단지) 권한이 저들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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