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국제시장>소통 혹은 미화?

너의길을가라 2014. 12. 1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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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우리는 과연 (할)아버지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세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2014년의 대한민국, 노인은 젊은 세대를 향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손가락질하고, 젊은 세대는 노인에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꼰대'라고 비아냥댄다.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더 이상 가까워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국제시장>은 대한민국의 역사, 그 시대적 아픔들을 완벽하게 훑어낸 영화이다. 1950년 6 · 25 전쟁부터 시작해서 60년대 파독(派獨), 70년대 베트남 파병, 80년대 이산가족 찾기 등의 '경제적 관점'에서 현대사의 굵직한 모습들을 통해 (할)아버지 세대의 삶을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한다. 이처럼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이면서 그와 동시에 세대간 소통의 교두보(橋頭堡)이기도 하다. 이미 윤 감독은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저도 젊은 세대의 반응이 궁금해요. 30~50대는 영화 속 이야기에 기억의 끝자락이 많이 닿아 있잖아요. 제가 감독이지만 10~20대 초반 친구들이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과거 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지금도 궁금해요. 개봉하면 알겠죠. 하지만 절대 10~20대를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냥 이런 일들이 수백 년 전에 있던 일이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다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알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아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그러하겠지만, '귀동냥'도 할 수 없는 지금의 10~20대는 그야말로 '전쟁을 게임(또는 영화)을 통해 배운 세대'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함을 생각하기보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총을 쏘는 액션의 짜릿함을 생각하는 세대인 셈이다. <국제시장>이 남북분단의 한 과정이 되는 '흥남 철수'의 극한적인 상황을 통해 10~20대 관객들이 조금은 이해하게 됐을까? 전쟁의 끔찍함과 (할)아버지 세대가 그 전쟁의 포화와 절규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한 가족의 장남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덕수(황정민)는 급기야 '파독'을 결심한다. 독일의 광산에서 광부로 일해 벌어들인 외화(外貨)로 동생의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같은 이유에서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 오영자(김윤진)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심각한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등 계획 경제로 인해 외화부족사태에 시달리고 있었다. 파독 광부 및 간호사는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대의 상징이다.



덕수의 고난, 대한민국의 고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베트남 파병'을 통한 외화벌이였다. 국 제적인 여론은 베트남 전쟁을 비난했지만, 6 · 25 전쟁에서 은혜(?)를 입은 대한민국으로서는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물론 파병의 대가로 한국군 전력증강을 비롯해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 등을 지원받았다. 또, 파병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파독을 비롯해 베트남 파병까지, 국가는 결국 (할)아버지 세대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발전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국제시장>은 80(~90)년대 대한민국 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상봉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덕수가 '흥남 철수' 당시 헤어졌던 아버지 윤진규와 여동생 윤막순을 찾아 헤매는 장면,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감동적인 순간들이 실제 이산가족상봉 동영상과 함께 배치되어 생동감을 더한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으리라.


"<국제시장>이라는 작품은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고생한 부모님 세대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드리는 헌사 같은 영화에요. 감독의 의도를 알아주시고 편한 마음으로 보신다고 하면 올 겨울에 행복하고 따뜻한 영화가 되시지 않을까싶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철저한 상업영화 감독인 윤 감독은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지극히 통속적(通俗的)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배분된 <국제시장>은 다양한 관객층이 찾을 수 있을 만큼 부담없는 영화이다. 특히 중 · 장년층 관객들은 아스라이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던 바인 세대 간 소통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열쇠는 결국 10~20대 관객에게 달려 있다.


어차피 중 · 장년층은 "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라며 어깨가 한층 올라갈 게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헌사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세대 간 소통을 위해 서로의 세대를 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국제시장>이 기여할 부분은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정치적인 맥락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배제시키다보니, 그만큼 더욱 정치적인 영화가 되었다. <국제시장>은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가 이토록 죽을 고생을 했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시대적 아픔을 야기했던 원인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다. 개인들에게 가난과 질곡의 삶을 떠넘겼던 국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를 통해 세대 간의 소통을 추구했던 <국제시장>은 바라던 바를 성취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시대를 미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까? 영화의 (통속적) 완성도를 통해 미뤄짐작하자면, 전자의 가능성이 보다 높아 보인다. 분명 <국제시장>은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이고, 따뜻함이 살아 있는 감동적인 영화이다. 또,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영화이고, 단지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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