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서 술자리에서 극단 선배들에게 대표와 있었던 일을 울면서 토로했다. 그런데 한재영이 '나도 너랑 자보고 싶어. 대표님도 남자야'라고 했다. 한재영은 나보고 나오라고 해서 바로 옆 술집으로 가 단 둘이 술을 마셨고 모텔에 가자고 했다. 거부하고 극단으로 갔더니 따라와서 성추행 했다."
또 한명의 '생존자'가 고발에 나섰다. 극단 '신화' 출신이라고 밝힌 A는 2011년 당시 대표이자 연출이었던 김영수와 배우 한재영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민소매에 속옷 차림으로 A의 볼에 뽀뽀를 하고, 그 행위를 이상하게 느끼는 건 '네 생각이 더럽게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A를 모텔로 데려가선 옷을 벗고 샤워를 하더니 침대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거부하자 화를 내며 나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괴로웠을 A는 극단의 선배들에게 대표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재영은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후배 A에게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고, 술집으로 데려가 술을 마신 후 A에게 모텔에 가자고 했다. A가 이를 거부하자 극단까지 따라와 성추행을 저질렀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모든 증언은 사실이었다.
상처는 여전했고, 아픔도 사라지지 않았다. 잊힐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더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한재영은 최근 최근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 안재구 역을 맡는 등 영화와 TV를 가리지 않고 중량감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고,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웃고 춤을 췄다. A가 그 장면을 보고 '부들부들 떨렸다'고 말할 법 했다.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제가 아팠던 것 얘기하며 울었고, 한재영 배우도 울며 미안하다고 얘기했습니다. 한재영 배우는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행동할 일 없다고 직접 얘기했습니다. 그땐 본인도 어렸다며.. 저도 이젠 한재영 배우에 대한 일은 털고 웃으면서 살고 싶고 한재영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봐도 이젠 아플 것 같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한재영은 다른 가해자들과 달리 피해자에게 '직접' 그리고 '곧바로' 사과를 건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과도 제법 진정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A는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면서 이제 한재영에 대한 일은 털고 웃으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몇 달에 걸친 성추행과 압박을 했던 김영수 대표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재영이 유명해서 묻히고 말았다고 언급했다.
도대체 김영수 대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김영수 대표의 태도는 미투 운동에 의해 지목된 가해자들의 일반적인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배우 조민기는 "명백한 루머"라며 발뺌하다가 더 많은 증언들이 쏟아지자 그제서야 사과에 나섰다. 배우 오달수는 사과라고 하기엔 민망한 내용으로 오히려 화를 돋웠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휴대전화 들면서 딱 앉아서 이렇게 하면서 그러면 가슴만 5초만, 싫어? 그럼 3초만. 이걸 찍어서 너한테 CG로 컴퓨터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드러머 남궁연의 경우는 더욱 악질이다. 무려 3명의 피해자가 남궁연으로부터 '옷을 벗으라', '누드 사진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고발했지만, 남궁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버티고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 급기야 고발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점을 이용해 고발자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자 4번째 폭로가 등장했다. 과연 남궁연은 계속 침묵할 수 있을까?
시인 고은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최근 의혹에 내 이름이 언급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내 행동이 야기했을 수 있는 의도치 않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 "일부가 나에 대해 제기한 습관적인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 아내나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도대체 무엇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일까. 어떻게 뻔뻔스럽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예들은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를 변혁시켜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달수의 전 매니저는 자신이 겪은 오달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했고, 오달수의 친구는 '루저였던 오달수가 어떤 직위와 어떤힘으로 상대를 억압하여 성적인 이득을 취했단 말인가'라며 변호했다.
여러 가해자들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피해자들을 겁박하고 있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언론은 어떨까. 자극적인 내용의 뉴스로 클릭질 유도에 여념이 없고,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제목과 내용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YTN은 '끝없는 '미투' 폭로...문화예술 행사 차질'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고, 미투운동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앵커 멘트로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우리는 미투 운동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사회변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여성들의 '폭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거기에는 개개인의 분노도 자리잡고 있을 테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가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법과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 똑같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한재영의 경우처럼) 당사자의 진심어린 사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잘못됐던 것이었다'는 고백도 필요하다. 그 다음엔 '성폭력이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그 구조적인 문제들을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면화된 성차별적인 사고를 씻어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혼자 가니 무섭제. 같이 가면 덜 무서울끼다.'라며 가해자들과의 동행을 선택하는 남성들. 'XX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거나 'XX는 억울하다'며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 혹은 진영논리를 앞세워 미투 운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이들. 이 얼마나 견고한 (남성들의) 동맹이란 말인가. 이 오래된 그리고 단단한 동맹이야말로 미투 운동이 무너뜨려야 할, 그리고 우리가 넘어서야 할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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