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 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
지난 21일,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로 선종했다.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으로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13년 동안 '빈자와 약자의 벗'으로 우리 곁에 머물렀다. 바티칸 부패척결·관료주의 타파에 앞장서고, 전쟁 난민·기아 등 문제 해결에 헌신했다. 평화와 위로를 건넸던 그의 삶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존경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당시 가톨릭은 최악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사제들의 성 추문, 성직자들의 뇌물 비리 등은 치명타였다. 게다가 베네딕토 16세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언론에 기밀문서를 폭로하면서 교황의 권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결국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스스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이전까지 단 한 번밖에 없었기에 너무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보수적이며 전통주의자였던 베네딕트 16세의 과감한 선택에 바티칸은 물론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의 성향이 진보적이며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주목받고 회자됐다. 이 내용은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두 교황'은 '시티 오브 갓', '콘스탄트 가드너'를 연출한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베네딕토 16세 역에 안소니 홉킨스, 프란치스코 역에 조나단 프라이스가 출연했다.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성과 서로를 향한 굳건한 신뢰가 가슴 뭉클하게 그려졌다. 관객은 노년의 현자들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나는 여기까지 했고, 이런 조처를 했으며, 이런 사람들을 해임했으니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는 한편, 세간의 관심사는 차기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로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후임자를 뽑는 과정을 '콘클라베(Conclave)'라고 하는데, 라틴어로 '열쇠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투표에 참여하는 80세 미만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이 완료될 때까지 시스티나 성당에서 외부와 격리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예기치 못한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과정을 담았다. 선거를 총괄하게 된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중립적 입장에서 원환할 투표가 이뤄지도록 애쓰지만, 유력 후보들이 스캔들이 휘말리면서 콘클라베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기에 교계 내부의 정치가 개입되고, 음모와 탐욕이 난무하며 혼돈이 야기된다.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에 음모와 탐욕이 웬말이냐고? 추기경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고, 사람의 일에는 욕망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콘클라베'를 통해 우리는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뽑는 선거도 우리네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추기경이라고 하는 종교계의 권위자들도 인간일 뿐이라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는다. 결국 정치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져나온다.
당장 차기 교황 후보로 진보 성향의 교황청 서열 2위인 이탈리아 출신 피에트로 파롤린(70) 교황청 국무원장이 거론되는 가운데, 비유럽이자 비백인인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67) 추기경, 보수 진영에서는 독일 출신 게르하르트 뮬러 추기경도 언급된다.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동성애를 포용하자고 주장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척점에 서며 비판한 전력이 있다.
콘클라베는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진행된다. 다만, 지난 100년간 치러진 총 7번의 콘클라베가 모두 4일을 넘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인 교황의 시대가 이어질 것인가, 보수적인 교황이 탄생할 것인가. 영화에서는 온갖 암투와 정치 싸움에도 인류애를 엿볼 수 있는 진단지성이 형성되고, 깜작 놀랄 반전도 펼쳐진다.
현실은 어떠할까.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색 연기(선출 성공) 이후 가톨릭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아직은 애도의 시간이지만, 곧 선거의 시간이 다가오리라. 그 사이에 우리는 '두 교황', '콘클라베' 이 두 편의 영화를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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