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반전 없는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와 조우진의 연기에 저릿했다

너의길을가라 2018. 12. 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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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모은 금은 기업들의 부채를 갚는데 쓰였다.’


<국가부도의 날>에는 ‘반전’이 없다. 마치 재난과도 같이 몰아닥쳤던 1997년 외환 위기를 그저 담담히 훑어 나간다. 관객들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섰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말없이, 때론 깊은 탄식과 함께, 그 참담했던 역사(와 그 시기를 살아냈던 자신의 기억)의 궤적을 따라간다. 긴박하되 긴장감이 없는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그럴 수밖에. 우리가 (각자 어떤 위치에 서 있었든) 산증인이니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경제 지표를 분석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홍콩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인 외환 위기가 한국에도 불어닥칠 조짐이 보였다. 이미 외국 자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국에서 발을 빼고 있었고, 환율 방어에 투입되고 있는 외환 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시현은 국가 부도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영화가 잘 증언하듯, 당시 청와대와 내각은 무사태평했다. 대통령은 경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불 같은 성과에 취해 있었다. 허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은 결코 튼튼하지 않은 상태였다. 2006년 무역 적자는 206억 달러가 넘었고, 나라빚은 1,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 외부 환경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취약했다. 



해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라 안팎으로 수많은 경고가 쏟아졌음에도 이를 무시해 왔던 정부가 한시현의 경고를 넙죽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경제 위기를 인정하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거라 변명했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떠안아야 할 정치적 책임이 두려웠던 것이리라. 경제 수석과 재정국 차관, 한국은행 총재 등으로 꾸려진 대책팀이 꾸려졌지만,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1997년 11월 21일, 결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걱정말라던 정부만 믿고 있다가 재앙을 마주한 국민들은 절망했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기업과 은행들이 줄도산했다. 실업률은 솟구쳤고, 자살률도 치솟았다. 그런데 이 재앙을 불러들인, 재정국 차관(조우진)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경제 신봉자들은 위기는 기회라 떠들어댄다. 또 따른 이득을 취할 궁리 중인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다. 


재정국 차관은 IMF 체제 하에서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라 주장한다. 시장경제로의 재편을 이야기한다. 그건 철저히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뜻했다. 그 수단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였다. 곧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시스템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IMF의 조건들을 전면 수용했던 당시 정부의 결정을 두고 ‘악마와의 거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는 한시현(과 윤정학)을 내세워 당시 경제 관료들의 무능과 무지를 탓하는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당시의 상황(과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공무원인 한시현이 차마 할 수 없는 힐난을 윤정학(유아인)을 통해 속시원하게 쏟아붓는다. 유일한 숨쉴 구멍이다. 또, IMF 체제가 가져온 경제 전반의 변화와 그 폐해를 지적한다. 구제금융의 진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따져 묻는다. 


일각에선 <국가부도의 날>의 관점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재경원은 ABS(자산유동화) 등 대안을 모색했고, 미국은 IMF의 최대 주주이므로 논의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노동자를 정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IMF에 구제 신청을 했다는 건 오버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박이 가능할 테고, 논쟁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이제야 IMF를 되새겨 보게 됐다는 것 말이다.


영화는 세 개의 축으로 나뉜다. 재정부 차관에 맞선 ‘한시현의 고군분투’가 첫 번째, 국가부도라는 해일의 직격탄을 맞은 납춤업체 사장 ‘갑수(허준호)의 고난’이 두 번째, 재난을 예측하고 그 해일을 타고 날아올랐던 ‘윤종학의 인생역전’이 세 번째다. 허준호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을 가진 배우답게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유아인은 재기발랄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날뛴다. 


<국가부도의 날>은 12월 5일까지 1,983,84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인 260만을 향해 순항 중이다.


가장 돋보였던 건 역시 김혜수와 조우진이었다. 두 배우는 시종일관 부딪치며 신경전을 벌이는데, 수준 높은 연기로 관객들을 집중케 한다. 김혜수는 인터뷰에서 한시현을 ‘투사’가 아니라 ‘소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그려내려 했다고 밝혔는데, 캐릭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한시현이 투사로 그려졌다면 영화적 긴장감은 살아났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뻔한 영화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강한 신념과 전문성, 뜨거운 심장을 지닌 한시현 역에 김혜수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만큼 김혜수의 카리스마가 영화에 큰 힘을 불어 넣는다. 또, 조우진은 자칫 밋밋한 수 있는 관료 역을 얄밉도록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그의 연기는 매번 새롭고, 천재적이다. “진짜 잘하는 사람과 했을 때의 흥분, 그런 걸 느끼게 하는 분이 제 연기 인생에 많지 않다. 그 중 한 명이 조우진."이라는 김혜수의 극찬이 이해가 된다.


어찌됐든 그 결말이 정해진 <국가부도의 날>은 씁쓸하다. 보는 내내 입맛이 쓰다. 뒷맛도 개운치 않다. 영화 엔딩 즈음에 나오는 ‘국민들이 모은 금은 기업들의 부채를 갚는데 쓰였다’는 자막은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쌓여온 배신감과 허탈감에 정점을 찍는다. <국가부도의 날>은 ‘위기는 반복된다’는 섬뜩한 경고를 보낸다. 깨인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우리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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