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책 36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7)

나는 죽음이 꺼림칙하거나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앞서 지상을 스쳐 간 많은 목숨이 그러했듯 모두가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된다. 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공포는 도리어 그 제한된 삶을 영원으로 믿는 순간에 온다. 영원한 젊을 갖고 싶은가? 그 젊음의 불안과 방황까지도?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은가? 그 사랑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영원한 삶이야말로 얼마나 끔찍하고 지루한 것인가?! - 김별아,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6)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서른 살이 넘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내 삶을 충고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삶을 바꾸어야 한다면 아, 그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대부분 '진심'이라고 하는 그 무엇. 나를 변함없이 나로 만들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그 무엇에는 항상 눈물이 따른다. - 김탁환, 『김탁환의 원고지』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3)

둘이 사랑할 때, 우리는 여름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섬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낯선 풍습을 가진 이방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여름, 이방인들의 섬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세계였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둘만의 섬을 떠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게를 더 이상 낯설게 바라보지 않을 테니까요.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은 늦든 빠르든 세계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 보게 될 겁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신기루와 같은, 둘만의 섬.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그 섬이 그토록 아름다웠다면,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기 때문이죠.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中..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2)

그래,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상처를 주지 않지.던진 돌에 가슴 한구석을 다쳐본 사람은 남에게 돌을 던지지 않아.한 번이라도 진실의 눈과 눈이 마주한 사람들은거짓을 가까이 하지 않지.이별이란 단어에 생의 한 부분을 베어본 이들은함부로 이별이란 말을 꺼내지 않아. 그래, 다 그런 거야. 진짜 여행을 만나고 온 자들의 입에서좀처럼 여행을 엿들을 수 없듯이. - 장연정, 『눈물 대신, 여행』中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8)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 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게 된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 정희진,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5)

행복을 추구하는 한 너는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사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모두 너의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목표를 가지고 초조해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행복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일의 물결은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너의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 헤르만 헤세, 「행복」-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1)

외로움이란 사랑, 기쁨, 행복, 평안 등의 긍정적인 감정보다 더 힘세고 질기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하는 연애는 결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사랑을 받아도 사랑 받는 줄 모르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내 속에 든 외로움의 크기를 재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늘 외롭다고 느끼는 건 인간은 원래 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라는 섬이 나라는 섬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까. 얼마 전, 또 한 번의 실연 후 다짐했다. 외로움을 핑계로 연애하지 않겠다고. 외로워서, 로 시작된 연애는 여전히 외롭다, 를 심감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니까. - 김신회 · 김기호, 『그래도 연애는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