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내 마음 속 원픽은 에드워드 리, 아니 이균이었다.
"나는 이균입니다."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완성한 요리를 가지고 한참을 걸어서 당도한 순간, 에드워드 리 셰프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시작했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리라. 꾹꾹 눌러 쓴 메모지를 꺼낸 그는 여전히 어눌한 한국어로, 하지만 진정성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의 한국 이름을 말했다. 비로소 에드워드 리, 아니 이균의 도전이 담고 있는 의미,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우승자가 가려졌다. 충격적인(?) 결과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프로그램에 대해 다양한 층위의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100명의 요리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셰프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앞서 언급했던 에드워드 리이다. 그의 요리를 보면서 그의 품격이 느껴졌고, 점점 더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다시 '흑백요리사'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20명의 백수저 중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리는 '2010 아이언 셰프' 우승자이자 미국 백악관 한국 대통령 국빈만찬 초청 셰프로 소개됐다. 다들 놀랄 수밖에 없는 강렬한 프로필이었지만, 워낙 쟁쟁한 요리사들이 많았던 만큼 (지금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진면목은 '요리'를 통해 시나브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저는 미국에서 살고, 미국에서 요리사입니다. 하지만 제 가슴속에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기 와서 쭉 제 유니크한 한국 한식을 보여 주고 싶어요."
흑백 요리사가 1:1로 맞대결을 펼친 2라운드, 에드워드 리의 상대는 1라운드에서 고기를 굽는 훌륭한 스킬을 보여줬던 '고기 깡패'였다. 랜덤 주재료로 '묵은지'를 뽑은 에드워드 리는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를 선보였다. 묵은지에 집중하고자 했던 그는 감을 넣어 맛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어떤 과일을 넣었냐며, 그 단맛이 자신에게는 '킥'이었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에드워드 리는 2:0으로 완승을 거뒀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체로 심사위원이 1:1로 맞선 대결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며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우리는 에드워드 리의 저 선언에 좀더 주목했어야 마땅했다. 그는 '흑백요리사'에서 자신만의 유니크한 한식을 보여줄 계획을 세웠고, 첫 요리를 통해 대장정을 향한 첫 레시피를 시작했다는 사실 말이다.
"팀 리더를 만들었다면 팀 리더를 믿어야 합니다. 때로는 팀 리더가 너무 고집스러울 때도 있지만 팀 리더를 믿어야 하니까 괜찮아요." (에드워드 리)
에드워드 리를 좀더 유심히 보게 된 계기는 3라운드 흑백 팀전이었다. 백팀이 첫 번째 대결에서 자중지란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탓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리더에 대한 철학이 공고히 뿌리내려 있었던 걸까. 에드워드 리는 리더 최현석의 변경된 조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위기의 순간에는 확고한 지지를 보내며 팀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미 요리 경연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고, 요리에 있어 일정한 경지에 오른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에드워드 리는 묵묵히 관자를 자르고, 굽고, 플레이팅했다. 리더의 조리 방식이 자칫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리더를 뽑았으면 믿고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완벽히 수행했다. 에드워드 리가 팀을 지탱했다.
"제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그대로 포기하거나 다시 일어서서 끝까지 싸우는 거죠."
'흑백요리사'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저토록 헌신적인 에드워드 리가 리더인 팀은 어떤 모습일까. 다행히 다음 라운드에서 그 호기심이 충족됐다. 이드워드 리는 우승 후보로 꼽혀 리더로 선정됐는데, 메뉴 선정부터 재료 구비, 요리, 판매까지 온전시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 미션에서 'Jang 아저씨 레스토랑'으로 화답했다. 그는 한국의 맛인 '장'을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구현해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원하던 재료를 구하지 못해 맛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 리뷰를 적극 반영해 스테이크를 익히는 방법을 바꾸는 등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유연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리더로서의 가치도 증명한 셈이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야죠."라며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끌고 가는 의연한 모습은 멋짐 폭발이었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길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에드워드 리가 1차 세미파이널에서 내놓은 '현대식 참치 캐비아 비빔밥'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고 설명했는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요리'는 잡넘을 사라지고 하는 탈출구이자 '한 맛'이라는 해답을 제시한 구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비빔밥에서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았다.
흔한 요리를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던 에드워드 리의 비빔밥은 남달랐다. 속재료를 넣은 밥을 둥그렇게 만들어 튀기고 참치로 감쌌다. 백종원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97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준 반면 안성재는 비벼먹지 않으면 비빔밥이 아니라는 1차원적인 접근으로 82점이라는 짜디 짠 점수를 줬다. 결국 에드워드 리는 3위에 머물렀다. 1위 나폴리 맛피아와는 3점 차이에 불과했다.
"저는 항상 창의력을 발휘해 예상치 못한 색다른 요리를 하려고 노력해요. 다른 셰프들과 똑같은 요리는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흑백요리사'의 백미는 2차 세미파이널, '무한 요리 지옥'였다. 에드워드 리는 두부를 주재료로 끊임없이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미션에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작성했다. 1라운드에서 잣, 아보카도 & 두부 수프, 2라운드에서 구운 두부와 가리비, 3라운드에서 훈제두부와 오리고기를 차례로 선보였다. 저마다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요리였다. 뻔한 레시피는 없었다.
4라운드에서는 이탈리아의 치즈 블록 파스타에서 영감을 얻은 두부 블록 고추장 파스타를 내놓았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만남이라 할 센세이션한 요리였다. 5라운드 켄터키 프라이드 두부는 에드워드 리의 창의성에 있어 화룡점정이었다. 최후의 승부6라운드에서 그는 유자 두부 크렘 브륄레를 만들어 자신만의 파인 다이닝을 완성했다. 완벽한 흐름이자 놀라운 기획력이었다.
"한국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넘치게 주는 바람에 항상 음식이 남아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풍족함과 사랑이 담긴 한국 음식의 특징이란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요."
결승에 진출한 그가 받은 파이널 미션은 '나의 이름을 건 요리'였다. 이미 그는 처음부터 한국 이름 '이균'으로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균에게 한국 음식이 품고 있는 정서는 '풍족하게 넘치는 사랑'이었다. 그는 항상 음식이 남을 만큼 넉넉했던 인심을 "먹다가 남은 3개의 떡볶이를 디저트로 재해석"했다. 심사위원 모두를 놀래킬 만큼 파격적인 레시피였다.
돌이켜 보면 에드워드 리가 만든 창의적인 요리를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발현되는 품격에 더 많이 감탄했다. 매순간 요리를 대하는 진중함이라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심사를 기다리는 겸허함, 그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는 그윽함에서 인생의 많은 배움을 얻었다. 더불어 그의 인격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다.
에드워드 리의 진가는 오히려 '흑백요리사' 우승자가 공개된 이후에 더욱 빛나는 듯하다. 나폴리 맛피아가 자신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사과했을 때도 "셰프, 당신은 승리할 자격이 있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마세요. 이건 대결이고,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이죠. 절대로 사과 할 필요없어요. 축하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아 존중과 배려를 보였다.
또, 한국에서 연습할 주방이 없어 불리했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주방이란 무엇이냐. (...) 주방은 화려한 장비나 고급 식재료뿐만 아니라 열정과 사랑, 창의력을 발휘하는 곳입니다. 도마와 칼, 호기심만 있으면 모든 방을 주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아름다운 해명을 통해 논란을 종결시켰다. 참 멋진 어른 아닌가. 어찌 에드워드 리, 아니 이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