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뉴욕 여행기] 6. 최고의 여행지 뉴욕에도 단점은 있다
2주 동안의 여행을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를 깊이 사랑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뉴욕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사랑 앞에 냉정할 수 있다니, 개울처럼 얕은 사랑을 반성하게 된다. 앞서 뉴욕의 장점(도심 곳곳에 위치한 공원,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 등 )에 대해 넋놓고 얘기를 했으니 이쯤에서 단점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게 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하는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높은 물가였다. 웬만한 식사 한 끼가 2~3만 원이니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게다가 팁까지 줘야 하니 지갑이 금세 얇아졌다. 오죽하면 '팁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끼지 생겼겠는가. 빅맥 세트도 11.99$로,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15,730원이다. 뉴요커들이 점심에 샐러드를 사서 공원을 찾는 건 살인적인 물가로 인한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치안도 조금 아쉽지만, 서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불안한 것일 뿐 굳이 밤 늦게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소매치기도 없어 여행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유럽을 여행할 때 '소매치기 안 당하는 법'을 시전하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삶의 영역에서 생각해보면 역시 '청결'이 아쉽다. 아마 뉴욕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맨해튼의 고급 호텔에서 묶으면서 우버 택시로 목적기까지 이동하는 식으로 편하게 여행을 하면 뉴욕(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지)의 민낯을 알 수 없다. '그걸 꼭 봐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존재했다기보다 스쳐지나가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여행 방법이라 추천하지는 않는다. 뚜벅이로 뉴욕 곳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 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맨해튼의 빌딩은 저마다 근사하고, 그 건물들이 수놓은 스카이라인은 감탄을 자아낸다. 뉴욕에 가면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땅을 보면 착잡하다. 거리는 지저분한 편이고, 지하철 역사 내는 어둡고 지린내가 진동한다. 입구에서 내려가기가 꺼려진다. 아침에 공원을 가면 밤새 그곳에 머물렀던 노숙자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낭만과 여유가 넘치던 그 공원이 맞나 싶다.
맨해튼 도심에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노숙자들이 즐비하다. 정말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널부러져 있어서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처럼 뉴욕의 맨얼굴 중에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가장 눈에 띠는 존재는 노숙자이다.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이 있는 대형 빌딩들과 달리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 같은 공공장소에는 노숙자가 정말 많다.
집 없이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 비위생적인 노숙자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뉴욕 시민들도 양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미국은 노숙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지난해 1월 기준 노숙자 수가 65만3천104명으로 집계됐다며 1년 사이에 12%(약 7만명)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노숙자 급증의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부가 시행한 '긴급 임대료 지원', '세입자 퇴거 금지' 등 특별 조치가 종료되면서 임대료가 치솟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원인 분석이다. 하지만 노숙자 증가의 근본적 원인은 '불법 이민자 증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뉴욕시에 불법 이민자들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2022년 봄이라고 한다.
베네수엘라에 경제 위기가 닥치고, 멕시코 국경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접경 지역인 텍사스주나 플로리다주로 불법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 주지사는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과 캘리포니아로 보내 버렸다. 모두 민주당 성향의 주지사를 둔 지역이다. 텍사스 입장에서는 폭탄을 던진 셈이다.
"뉴욕은 이민자가 이룬 도시이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쉼터 제공법'이 있는 뉴욕시는 처음에만 해도 이민자 버스에 관대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 수가 약 18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텍사스 주에서 온 규모만 3만 여 명에 달했고, 소문을 듣고 옮겨온 불법 이민자 수도 상당했다.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뉴욕 시내 곳곳에 노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뉴욕의 지하철 내의 벤치에는 팔걸이가 설치되어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하고, 그나마 있던 벤치도 사라지고 몸을 기댈 수 있는 구조물로 대체되고 있다. 이를 '배제(排除) 건축',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이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를 몰아낸다는 비판도 있지만, 뉴욕 시민들은 워낙 심각해진 노숙자 문제에 대한 방편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올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불법 이민자 문제가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시한 여론조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안으로 '불법 이민자'를 꼽은 응답자가 20%였다. 미국 유권자들은 경제(14%)보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박빙을 유지하며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자 입장에서 뉴욕의 노숙자 문제,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개를 들면 너무나 아름다운 뉴욕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대해 소개하며 자유, 여유, 낭만 등을 자주 언급했던 것도 마음에 쓰였다. 물론 뉴욕은 여행하기에 최고의 장소이지만 그래서 뉴욕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도 2018년 500명이 넘는 예민 난민이 제주도에 입국한 뒤, 수용 여부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갈등을 겪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불법 이민자 이슈는 첨예한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이 사안이 비단 뉴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여행기의 한 페이지를 할애해 본다. 과연 뉴욕은 노숙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