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터줏대감 연극 '행오버', 관객 반응이 뜨거운 이유
이름만 호텔이지 실상은 모텔이나 다름 없는 그 곳, 서울 변두리의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지연(아내)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작심한 듯 작전명 "행오버"를 지시한다. 도대체 '행오버'는 무엇을 언급하는 걸까. 질문은 깜깜해진 조명과 함께 사라진다. 탑 조명 아래 강렬한 오프닝으로 연극 '(행오버hangover)'의 막이 오른다.
이어 예행 연습을 하는 두 남성이 나타난다. 잠시 후 비명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알고 보니 지연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철수(남편)는 이벤트 업체 대표 태민을 고용해 지연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한다. 문제는 그 이벤트가 '납치'라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만취한 철수가 지연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506호는 살인 현장이 되고 만다.
당황한 태민은 피투성이가 된 철수를 급히 507호로 옮긴다. 하지만 그곳에는 다른 2명(케이, 엠마)이 더 있었다. 507호에서 만난 태민, 철수, 케이, 엠마 4명은 서로 의심하며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극의 후반부가 되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반전이 여러 차례 몰아친다. 지연이 철수의 외도를 알고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태민을 고용했다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90분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연극 '행오버'의 전개는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관객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게다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는 예측이 어려워 몰입도를 높인다. 극 자체가 워낙 긴박감이 있다보니 약간 허술한 개연성도 거슬리지 않는다. 추리물에 코미디가 더해져 웃으며 즐기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다른다.
2014년부터 10년째 대학로를 지켜오고 있는 '행오버'는 '정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정극장은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왼편으로 보이는 붉은색 벽돌 건물인 '아르코 예술극장'을 지나면 보이는 소극장이다. '행오버 매표소'라고 쓰인 티켓 박스가 있어서 위치를 찾기에 어려움은 없다. 현장 발권을 하거나 미리 예매한 티켓을 받아 입장하면 된다.
예매할 당시에는 빈자리가 제법 많아서 '관객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했었는데 이게 웬일. 계속해서 관객들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총 122석의 좌석이 가득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관객층이 좌석을 가득 채워서 조금 놀랐다. 100석 안팎의 소규모 연극은 '쉬어 매드니스' 이후로 처음인데, 대학로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행오버'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짜임새있는 작품이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고, 나중에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웃음은 라포(rapport)가 형성된 뒤에나 가능한 상호 작용이 아닌가.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배우들의 노하우가 돋보였다.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연극의 힘은 극본과 배우들의 열연에서 나올텐데, 이번 공연(만 그런 건 아니겠으나)의 배우들이 내뿜은 에너지가 워낙 뜨거워서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김세율, 이리안, 손준표, 이주하 그리고 특히 김동현은 온몸을 던진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쯤되면 관객은 배우들의 손짓 하나, 대사 하나에도 기꺼이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와 달리 연극이 줄 수 있는 체험이다.
또, 대형 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소위 스타 배우들의 연기를 실제로 직관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무대가 크고 객석도 많다보니 현장감이 옅다. 배우와 직접 소통한다는 기분이 덜하다. '행오버'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 어떤 연극보다 생동감이 넘쳤다. 무대를 즐기고 있는 배우들의 자세가 느껴졌고, 연기에 진심인 배우들의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현장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소극장의 무대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대학로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 만취의 기억 속 진실을 찾는 '행오버'의 추리에 함께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