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좋은 친구들>, '의심'이 아니라 '빗나간' 우정이 포인트

너의길을가라 2014. 7. 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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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좋은 친구들>이라는 제목만 보고서 이 영화가 친구들 간의 뜨거운 우정과 의리를 그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하수다. 일반적으로 '친구'라는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긍정적인 것이기에, 굳이 우리는 그 앞에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덧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좋은 친구들>이라고 지었다면 우리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과연 <좋은 친구들>은 정말 '좋은'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일까?

 

의심과 함께 우리는 또 다시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과연 도대체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 애초부터 '좋다'라는 말은 매우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누군가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하고 반대하는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좋다'라는 개인적 판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좋은'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저 '친구'만 있을 뿐.

 

 

 

<좋은 친구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눈 세 남자 현태(지성), 인철(주지훈), 민수(이광수)가 '예고된'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바른 생활 사나이인 119 구급대원 현태는 사설도박게임장을 경영하는 부모님과 연을 끊은 채 살아간다. 인철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 팀장으로 실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위 나일롱 환자를 만들어 보험 사기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17년 동안 이어온, 결코 무너질 것이라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단단한 우정의 붕괴는 바로 '보험 사기'로부터 비롯된다. 인철은 서로 등진 채 살아가는 현태의 어머니와 현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왔는데, 그러던 중 현태의 어머니와 인철은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가짜 방화 사건'을 꾸미기로 공모한다. 물론 각자의 이익을 위한 모의였다.

 

 

인철은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민수를 꼬드긴다. 명분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현태의 어머니가 보험금을 타고 사설도박게임장을 그만두게 되면 현태와의 관계도 회복될 것이고, 인철과 민수에게도 보험금의 일부가 떨어지게 되니 손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말은 마음이 약한 민수를 흔들게 되고, 결국 인철과 민수는 '가짜 방화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급기야 현태의 어머니가 죽게 되면서 세 사람의 우정은 최악의 상황 속에 몰리게 된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친구를 위하는(위한다고 여기는) 일'이 '불법'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인태의 행위에 있어 친구를 위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그의 행동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한 것이었다. 인태가 '좋은' 친구가 아닌 이유는 그가 단순히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를 위한다'는 명분 속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 아닐까?  

 

 

영화 홍보팀은 '친구를 의심한 순간 지옥이 시작되었다'는 문구를 포스터에 넣으면서 '의심'을 포인트로 잡았지만, 사실은 영화는 '의심'보다는 '빗나간 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라스트 5분부터 '의심'에 대한 비밀들이 밝혀지고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기지만, 영화의 주된 스토리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만약 '오해가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이 우정을 파괴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면, '오해'가 전면에 등장해야 하는데, 인철의 행동은 명백한 '불법'적인 '행위'이므로 그것은 '오해'의 영역이 아니다. 고작 '오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가짜 방화사건'을 저지른 동기에 관한 것인데, 이 또한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보험금이라는 것이 명백히 명백히 '수령자'가 명시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현태의 입장에서) 인태와 민수가 돈 때문에 자신의 엄마를 죽였을 것이라는 오해는 애초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지성(38), 주지훈(33), 이광수(30)가 '친구'로 출연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들이 과연 '친구'로 케미를 맞출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 사이에도 '역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 아니겠는가? 친구 사이에는 맏형 같은 친구가 있고, 조금은 어리숙한 막내와 같은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좋은 친구들>은 세 명의 배우에게 그들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맡겼고, 또 세 배우는 이를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지성이 맡은 현태는 시소로 치면 축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양쪽에 주지훈과 이광수가 있으면 그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는 이도윤 감독의 말처럼 지성은 절제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 나간다.

 

무겁거나 시크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주지훈도 <좋은 친구들>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인철' 역을 완벽히 소화해낸다. 예능 프로그램(런닝맨)에서 한없이 가벼운 모습만을 선보였던 이광수도 두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원숙한 내면 연기를 선보이면서, 드라마 <착한남자>에서 보여줬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켰다.

 

 

<좋은 친구들>은 '우정'과 '의리'를 조폭의 영역에서만 구현해냈던 한국 영화들에 대한 아쉬움을 지워주는 고마운 영화다. 연출을 맡은 이도윤 감독은 신인 감독임에도 자신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흔들림없이 담아냈다. 기존 한국 영화들이 답습하곤 하는 비현실적인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인한 변화와 갈등을 담아내면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상 생활에서의 우정과 의리를 그려낸 <좋은 친구들>은 그 우정과 의리라는 것이 '삶'과 '욕망'에 의해 언제든 뿌리채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것이었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와 격한 씨름을 벌여야 한다. '좋은 친구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친구'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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