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획일화된 대법관 구성, 다양성의 요구는 또 한 번 외면당했다

너의길을가라 2015. 1. 19. 08:00
반응형


"이번 추천의 결과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에 대한 법원 내외부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송승용 수원지법 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의 일부)



대한민국의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바로 '50대 남자 · 서울대 · 판사 출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토당토 않은 대법관 임명 공식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오는 2월, 퇴임을 앞둔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명의 후보(강민구 창원지법원장,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한위수 법무법인태평양 대표변호사)도 이 공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와 법원행정처 자료를 열심히 종합 · 분석한 <한겨레>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5년 1월 현재까지 임명된 대법관은 총 86명이었는데 그 중 판사 출신은 70명(81%)으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 검사 출신은 9명(10.4%), 변호사 출신은 6명(7%)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변호사 출신 6명은 판사 경력이 있었고, 검사 출신은 구색 맞추기를 위해 내어준 것에 불과했다. 정리하자면, '대법관 = 판사 출신'인 셈이다.



일률적이고 획일화된 대법관 구성에 대한 비판은 법조계 안팎에서 거듭 제기되어 왔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50대 남자 · 서울대 · 판사 출신'의 대법관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동안 이어진 대법원 판결의 보수화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치며 공명(共鳴)을 만들어낼 때, 뜨거운 토론과 함께 진보와 발전이 따라오는 것 아니겠는가?


같은 대학에서 같은 교수(학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의 폐쇄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혁신해야만 한다.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잠깐 들여다보기로 하자.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①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의 추천을 위하여 대법원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0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③ 위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1. 선임대법관
2. 법원행정처장
3. 법무부장관
4. 대한변호사협회장
5.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6. 사단법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7.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위원 10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7명이 현직 법조인으로 채워져 있다. 의견이 엇갈린다고 하더라도 다수를 점하고 있는 법조인이 미는 동료가 대법관 후보로 뽑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도가 아니라 100%)다. 게다가 위원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도록 한 규정도 문제다. 결국 대한민국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장인 대법원장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감히(!) 어느 누가 반기를 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작년(2014년)11월, 여야 의원 146명은 대법관의 절반을 판사 출신이 아닌 법조인으로 채우도록 할당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해서 대법원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법조인의 입맛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 규정을 손질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만의 리그'는 약간의 변형을 거친 채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반드시 보수적일 것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과거 참여 정부 시절 임명됐던 이른바 '독수리 5형제' 대법관들의 경우에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4명, 서울대 출신이 4명, 판사 출신이 4명으로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이들은 진보적인 판결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사회의 다양성을 지켜왔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대법관들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한 참여 정부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반면, 호남 출신에 비(非)서울대 출신 여성으로 주목과 기대를 받았던 박보영 대법관은 보수적인 판결로 일관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쏟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쌍용차 해고무효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박 대법관은 그 재판의 주심을 맡아 복직을 결정했던 항소심을 뒤집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렇다고 해서 박 대법관의 예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혁신을 방해하거나 가로막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출신 성분'보다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집단의 구성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보다 활발하고 생산적인 집단으로 바꿔가는 노력도 선행(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대법원 내부가 상호 견제가 되지 않고 획일화되면 결국 사회도 극단으로 쏠릴 우려가 있다. 대법원을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는 이상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