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백종원의 골목식당' 톺아보기

확 달라진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 백종원은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너의길을가라 2021. 2.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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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의 입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게 뭘까. 아마도 '빌런'의 등장이 아닐까. 물론 어떤 빌런은 화제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백종원과 빌런의 갈등 구도로 재미를 솔찬히 봤던 건 사실이다. 백종원이 역정을 내면 낼수록 시청률은 상승했다. 문제는 백종원이 '멱살을 잡아 일방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빌런'이다.

시청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케이스다. 왜냐하면 공정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 입장에서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의 등장은 초비상과도 같았으리라. 사이렌이 마구 울렸을 것이다. 요식업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었고,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의욕마저 없어 보였다. 할 수 있다고 대답은 잘했지만, 태도는 항상 소극적이었다. 눈빛도 죽어 있었다.

게다가 '이야기'도 빈약했다.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가게를 물려주고 떠난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는 추어탕집 사장님이나 창업 후 자녀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부족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는 베트남쌀국숫집 사장님에 비해 몰입할 만한 스토리가 없었다. 물론 '성장'이라는 필살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법 아닌가.


시청자들은 당장 불만을 쏟아냈다. 세상에 도와줘야 할 식당이 얼마나 많은데, 죽어라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장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같이 기본기와 의욕이 없는 빌런에게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냐는 얘기였다. 방송의 힘을 왜 쓸데없이 낭비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비판이다. 제작진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지난 주 김성주는 '쉬었음' 인구라는 통계를 소개했다.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의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인데, 그 수치가 271만 5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37만 9000명 증가해 최고치를 기록했고 설명했다. 김성주는 "그런 분들 입장에선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서 "뭐라도 하려고 시도하는" 사장님을 살려보려고 하는 거라 덧붙였다.

"이건 저와 같이 음식점을 하는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되는데, 그런 기회를 못 만들어준 거예요. 이번 기회에 본보기를 만들어 주고 싶은 거예요."

백종원은 '살린다'고 하면 떠먹여준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 같이 막상 창업은 했는데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을 되짚었다. 요식업 선배로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 얘기하면서 사장님의 성장과정이 청년창업의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지만 보인다면 요식업의 A to Z를 알려줄 예정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지가 필요했다. 백종원이 사장님의 멱살을 잡는 시늉을 해가며 의욕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시청자를 설득해야 했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종원의 지적을 수용해 변화를 꾀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다시 물청소를 시작했고, 이리저리 궁리하며 애를 쓰며 노력했다.

다시 연어새우덮밥집을 찾은 백종원은 사장님의 변화 의지를 기특하게 여겼다. "이게 정상인 거지. 이래야 내 가게가 되는 거예요. 내가 피땀 흘려야 진정한 내 가게가 되는 거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님은 돼지고기 조림덮밥을 새로운 메뉴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고, 백종원은 사장님을 데리고 서울중앙시장으로 가서 화구 등 주방 집기를 하나씩 설명하며 골라줬다.

어디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공부였다. 물론 그건 방송을 통해 지켜볼 수많은 초보 요식업자들을 위한 백종원의 특별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연어새우덮밥집은 회색의 칙칙함을 벗어던지고 오렌지 컬러로 상큼하게 변신했다. 화구, 김치냉장고, 바트, 테이블 냉장고 등 주방설비들이 설치되자 주방도 제 모습을 찾아갔다. 사장님도 적극적인 마인드로 주도해 나갔다.


"의지는 있어요.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창업을 꿈꾸는 사람도 많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긴 하지만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어떤 창업은 배워서 되는 것도 있지만, 요식업은 인맥이 없으면 대부분 이렇게 돼요."

백종원은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이 의지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나약하다', '힘이 없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장님의 성장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덮밥 그릇에 묻은 양념을 닦지 않고 서빙을 하는 등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다. 백종원은 하나하나 가르쳐 나갔다. 김성주는 그 장면을 보며 마치 직장상사가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출연자 '자격' 논란은 앞으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방영되는 동안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의지만 보인다면 설령 조금 답답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려봐야 하지 않을까. 백종원의 말처럼, 이건 요식업의 (창업)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현실이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기도 하니 말이다.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사장님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들도 자신의 문제를 고쳐보기 위해 솔루션을 신청했을 테니 말이다. 그건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기보다 시스템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가능한 일이다. 따끔한 충고만큼이나 제대로 된 교육과 가슴으로 전하는 응원도 필요한 법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연어새우덮밥집 사장님이 자신의 우직함을 증명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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