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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만 하는 <부암동 복수자들>, 바보야! 문제는 가부장제야

너의길을가라 2017. 11. 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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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復讐)하다 : 받았던 상처나 고통, 원한 따위를 되돌려 갚음하다.


야심차게 복수를 외쳤던 '복자 클럽'이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너희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를 받고 몸을 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역시 복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설사약을 먹이고 의자에 접착제를 붙여 골탕을 먹였고, 양동이에 물을 받아 화장실 안에 쏟아부었다. 닭싸움으로 부상을 입혀 목에 깁스를 하게 만들고, 화병 약을 먹여 폭력성을 잠재우는 등 소소한 복수들을 성공시켰다. 그 작지만 담대한 복수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곧 위기에 봉착했다. 복자 클럽에게 된통 당했던 교장 홍상만(김형일)은 잡지의 글씨를 잘라 협박 편지를 보냈고, 인맥을 동원해 홍도희(라미란)의 생선가게를 단속토록 해 생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줬다. 이미숙(명세빈)의 남편 백영표(정석용)는 자신이 먹었던 약이 보약이 아니라 화병 약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내가 화병이야? 말하지 그랬니? 나한테 독약 먹이는 줄 알았지."라며 미숙을 압박한다. 김정혜(이요원)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남편의 의심이 짙어지는 가운데 이수겸(이준영)의 친모 한수지(신동미)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위기는 '복자 클럽'에게만 닥친 게 아니었다. tvN <부암동 복수클럽>도 덩달아 위기에 빠졌다. 초반의 신선한 설정과 재기발랄한 전개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 달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구마'만 잔뜩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 대학 교수의 부인, 재래시장의 생선장수라는 전혀 다른 계층의 여성들이 연대해 '가부장제'에 대항한다는 큰 얼개는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주제의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방향성을 상실한) 소소한 복수에도 지지를 보냈다. 그것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부암동 복수클럽>은 '복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복수라는 게 한없이 가볍다. 좀더 정확히는 장난스럽다. 도희 · 미숙 · 정혜가 평생에 걸쳐 받아왔던 고통과 상처는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것인데, 마치 어린애들의 장난 같은 복수로 해소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당치도 않다. 복자클럽의 자잘한 복수가 성공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그 웃음 뒤엔 매번 씁쓸함이 진하게 남았다. 이는 온당한 등가교환이 아니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일까. 아니, 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알고 있는 걸까.



복자클럽의 복수가 '자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남자들', 그러니까 가부장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 내에서 공고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독점한 상태에서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남자들에 비해 복자클럽 멤버들은 여러모로 열세일 수밖에 없다. 재벌가의 딸인 정혜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그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공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애초에 사이즈가 큰 복수는 염두에 둘 수 없었다. 그만큼 현실이 버겁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중요하다. 복자클럽 멤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모른 채 복수에 뛰어들었다. 그러다보니 복수 그 자체에서 쾌감을 느끼기보다 연대가 주는 안정감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마치 복수가 아니라 관계를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복수는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으로 제한했다. 자신들의 장난 같은 복수가 성공할 때마다 잠깐씩 웃음을 지을 순 있었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고 상황은 점차 악화됐다. 지금에 와서 복자클럽 멤버들은 깨달았을까. 그런 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닭싸움으로 부상을 입혀 잠시동안 목에 깁스를 한다고 해서, 화병 약을 먹여 폭력성을 잠시 죽여놓는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진 않는다. 미숙은 술을 안 마시면 괜찮다며 남편을 변호하지만, 백영표가 평소 집에서 보여주는 행태들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를 하기보다 다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미숙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가족의 해체'를 선언하는 것이리라.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도희의 말처럼.



<부암동 복수자들>은 '함께 복수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연대'를 통해 맞설 대상은 분명하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위계(位階)다. '여기'까지는 온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그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무엇을 쟁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부암동 복수자들>가 빠져있는 늪은 바로 이것이다. '고구마'는 이해할 수 있다. 더 큰 사이다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가짜 사이다를 파는 건 답답한 일이다.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끝내 실패할 것이다. 


'가정 폭력'만 놓고 생각해봐도 그렇다. 우리는 가정 폭력을 접했을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가정(족)'이라는 단위를 먼저 떠올린다. '가정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폭력적인가. 도희 · 미숙 · 정혜는 '엄마', '아내' 등의 역할에 갇혀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나'가 아니라 '가족'이 무엇보다 우선된다. 그래서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가장 아름다운 결말? 그건 도희 · 미숙 · 정혜가 자신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떠나는 것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이 그런 결론을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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