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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스페셜] 한국 최고의 모래강 내성천을 망가뜨린 4대강 사업과 영주댐

너의길을가라 2021. 6. 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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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모래강, 길이 110km의 내성천(乃城川)은 경북 봉화군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을 거쳐 문경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모래가 쌓여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또, 곳곳에 쌓인 모래톱은 내성천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금빛과 은빛의 수많은 모래알들이 물과 함께 흘러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내성천을 모래의 강이라 불러왔다.

내성천은 강물과 모래와 시간이 만든 자연의 걸작품인 셈이다. 강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수많은 생명을 불러모았다. 멸종위기종 2종 흰몰물떼새, 꼬마물떼새, 물 속의 모래무지와 흰수마자, 땅굴파기의 명수 표범장지뱀까지 다양하다. 멧돼지, 담비, 큰고니, 수달도 이곳을 찾는다. 지난 2019년 국립생태원은 내성천 일대에 야생 생물 1천 418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제가 보면서 감동할 수밖에 없는 많은 모습을 이 강에서 봐 왔는데 그게 사라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죠." (박용훈 생태사진가)


이처럼 모래는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다. 그러나 현재 내성천은 매우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KBS2 <환경스페셜> '지금부터 강이 들려줄 이야기' 편은 내성천의 변화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제작진은 내성천을 10년 넘게 기록하고 있는 생태사진가 박용훈 씨를 만났다. 그는 내성천의 모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개탄했다.

융단처럼 펼쳐져 있던 모래톱이 사라진 자리는 무성한 풀숲이 되어 있었다. 앙상한 가시덤불과 버드나무 숲으로 변해버렸다. 내성천은 단지 10년 만에 처참히 망가졌다. 모래가 사라지고 숲이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단지 풍경의 변화일 뿐일까. 아니다. 모래를 무대로 살아온 생명들에게 '생존의 위협'이다. 내성천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종 흰수마자의 최대 서식지였다.

지금 내성천에 흰수마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작진은 내성천의 주요 구간에서 흰수마자를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흰수마자 치어 1만 마리를 방류했으나 3년이 못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하상 장갑화(하천 바닥이 딱딱해지는 현상)가 일어나면서 내성천은 더 이상 흰수마자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물고기 한 종이 사라진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하지만 이 환경 변화가 주는 경고는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다. MC 김효진은 "자연이 우리 눈앞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자연이 훼손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봉화에서 발원한 강물은 화강암의 풍화 작용이 활발한 영주-봉화분지를 지나며 풍부한 양의 모래를 얻게 되고, 낙동강에 합류할 때까지 이 모래를 실어나른다. 그래서 내성천은 한국 최고의 모래강이 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모래강이었던 내성천이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지난 10년의 배경에는 바로 영주댐이 있다. 영주댐이 건설되고 난 후 내성천은 처참히 망가졌다.

영주댐 건설을 찬성했던 반대했던 각자의 입장이 있겠으나, 댐이 내성천의 모습을 바꿨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영주댐에 가로막혀 모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모래를 채워보아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그 시작은 4대강 사업이었다. 정부는 물 부족과 홍수 피해, 수질 개선을 이유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건 자연이 만든 강을 인간이 대신 만들겠다는 '오만한' 생각이었다.

영주댐 건설도 4대강 사업의 일환이었다. 명분은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수질 개선과 하천 유지 용수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댐 건설에 투입된 예산만 무려 1조 1천억 원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됐다. 과연 수질 개선은 이뤄지고 있는 걸까. 해매다 여름이면 낙동강에는 녹조가 창궐한다. 전문가들은 영주댐이 녹조를 만들어내는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수질 개선 특히 낙동간 본류이 수질 개선 그것도 중하류이 수질 개선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댐은 목적이 없고 용도를 상실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백경우 한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영주댐 아래의 수질은 어떤 상태일까. 카메라로 살펴본 상황은 심각했다. 자정 능력을 넘어서는 오염 물질이 물에 유입되면 염양 염류가 풍부해져 녹조류가 발생한다. 녹조는 산소를 고갈시켜 물을 썩게 만드는데, 댐 아래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맑은 물에 사는 고기들은 보이지 않고, 왜래종 배스만 눈에 띠었다. 육식 어류인 배스가 활개친다는 건 생태계 균형이 깨졌다는 의미였다.

백경우 한경대학교 교수는 영주댐과 낙동강 주하류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댐의 물로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수질 개선이라는 사업 계획 자체가 무리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물 부족과 홍수 피해를 막겠다는 목적은 타당했을까. 역시 어불성설이었다. 모래는 곡극률이 40%에 달하는데, 이는 300ml의 모래가 120ml의 물을 저장한다는 뜻이다.

모래층에 저장된 물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주변 생태계를 지탱해 준다. 또 인간도 기초적인 방법으로 관정해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래는 스스로 가뭄과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거대한 물 저장고인 셈이다. 오경섭 한국교원대학교 지형학과 명예교수는 "모래강이 유지되는 곳에서는 아무리 인(P)의 함량이 높더라도 녹조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명승 제16호로 지정된 회룡포의 모습

"아름다운 강이 수없이 훼손되어 왔는데 정말 내성천만큼은 꼭 지켜서 그 온전한 모습을 우리가 같이 누리고 후손들도 누려야 하는 그런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용훈 생태사진가)


영주댐이 건설된 후 내성천에 모래가 사라지면서 영양분이 가득한 흙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 상태에서 좀더 경과하면 숲이 더욱 커지게 될 테고, 그러면 설령 영주댐을 해체하더라도 숲이 물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원형을 되찾을 수 없다.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숲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벌판과 맑은 물, 저물녁 물수제비를 하는 제비, 야생 동물들이 느긋하게 쉬어가고, 멸종위기종이 터전으로 삶았던 곳, 이것이 박용훈 씨가 기억하는 내성천의 풍경이다. 하지만 불과 10년 만에 내성천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이대로라면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은 박용훈 씨가 남긴 사진 속에서만 남게 될 것이다.

잠시 빌려쓰고 있는 이 자연을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온전히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효진은 "아직 늦지 않았"다며 각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대로 계속 방관한다면 아름다워야 할 자연 생태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내성천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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