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시사교양

학대받은 코끼리, 사냥당해 박제된 사자.. '휴머니멀' 유해진은 충격에 휩싸였다

너의길을가라 2020. 1. 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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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팔자 좋아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좀더 있다 보니까 완전 착각이더라고요."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생태공원을 방문한 유해진은 처음의 어색함을 털어내고 코끼리들과 금세 친해졌다. 몸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며 함께 어우러졌다. 유유자적히 공원을 거니는 코끼리들의 모습을 보며 '팔자가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크고 아름다운 상아를 얻기 위해 무자비한 밀렵이 횡행하는 보츠와나와 '코끼리의 나라' 태국의 사정은 다르리라 생각했다. 일말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코끼리 생태공원 설립자 생드언 차일러트는 유해진에게 눈앞에 있는 코끼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왜 그러는 거죠? 선천적인 건가?" 유해진의 질문에 차일러트는 "새총이나 작대기 같은 거로 학대받아서" 그렇다며 이곳에는 학대로 인해 눈이 먼 코끼리가 무려 18마리나 된다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유해진은 깜짝 놀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예 다른 세상이 있었어요, 이 안에."

그제서야 모든 게 달라보기 시작했다. 평화롭게 보이던, 팔자 좋아보이던 코끼리들에게 아로새겨진 깊은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고 평생동안 잔혹한 노역에 시달렸다. 야생 코끼리의 모습은 애초에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코끼리들은 더 이상 쓰임새가 없어 인간에게 버려졌고, 그 중 일부만이 차일러트에게 발견돼 코끼리 생태공원으로 옮겨졌다.


차일러트는 아시아 코끼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을 태우고 도로를 이동"하거나 "나무 끌기, 서커스, 트래킹, 사원 축제 등 여러 가지 행사에 이용"되는 건 여사였다. 심지어 "결혼, 운동경기, 축구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코끼리가 동원됐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코끼리들이 뇌에 문제가 생길 만큼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가 끝내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태국 코끼리의 90% 이상이 이른바 '코끼리 트래킹'에 이용되고 있었는데, 생후 4~5년밖에 되지 않은 새끼 코끼리들이 어미와 강제로 분리돼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날카로운 작대기로 온몸을 찔려 고통받아야 했다. 극심한 공포와 아픔은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고 복종하게 만드는 '파잔'이라는 의식이었다. 그래야 인간의 말을 따르는 고분고분한 코끼리가 되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 70세였던 코끼리 티끼리는 온몸이 비쩍 말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얼마나 모진 착취를 당했는지 짐작할 만했다. 더 이상 (인간에게) 쓸모가 없어진 어김없이 티끼리는 버려졌고, 코끼리 생태공원으로 옮겨졌으나 한달 만에 숨지고 말았다. 여전히 태국 코끼리의 1/4 그러니까 4,000마리에 가까운 코끼리가 노역이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 코끼리를 보며 웃을 수 없었다.

유해진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서커스장에서 야생의 코끼리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코끼리를 보며 착잡한 심경을 느꼈다. 인간에 길들여진 코끼리들의 삶, 그 이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유해진은 눈물을 흘렸다. 차일러트는 "코끼리와 인간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코끼리를 학대하기 때문"이라 덧붙였다. 현실을 비추는 그의 말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다. 하지만 땀은 누가 흘려줄 거냐."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은 지난 9일 방송된 2부에서 태국 코끼리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이어 '트로피 헌팅'의 실상을 공개했다. 미국의 유명한 트로피 헌터, 올리비아 오프레는 집 안에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해 두고 자랑스러워했다. 박제된 사자의 갈기를 만지며 무용담을 쏟아내는 올리비아 오프레의 이야기가 유해진에겐 더 이상 와닿지 않았다.

올리비아 오프레는 돈을 내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사냥하는 트로피 헌팅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은 나이 든 수컷만 사냥하므로 생태계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트로피 헌팅의 경제적 효과가 아프리카 지역 사회는 물론 동물 보호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지불하는 돈이 지역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야생 동물 보호에 쓰이고 있다는 논리였다.

"사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묻고 싶어요. 동물 죽이는 것에 무턱대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요. 그래서 당신이 하는 건 뭡니까? 죽어가는 불쌍한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런데 과연 트로피 헌터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총으로 동물들을 쏴죽이는 저들의 말은 진실일까? 정말 소수의 나이 든 수컷 동물의 희생으로 더 많은 동물들의 삶이 보호되는 걸까? 그 답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황게로 떠난 류승룡이 찾아 나섰다. 그는 짐바브웨 국립공원에서 사자를 연구했던 야생 보전 연구가 브렌트를 만났다.


브렌트는 새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나이 든 수컷을 죽이면 남은 가족들이 위기에 빠지게 되므로 결국 생태계가 교란된다고 설명했다. 또, 국제헌팅헌팅협회와 UN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헌팅 업체들은 헌팅 구역에 사는 주민돠 지역 사회에 자신들 총수익의 3%만을 돌려주고 있다고 알려줬다. 결국 수익의 대부분은 업체와 정부 관계자가 독식했다.

또, 트로피 헌터들은 합법적인 사냥만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정색 갈기가 특히 아름다웠던 사자 '세실'은 사냥이 허가된 경계로 유인당해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최근 10년간 아프리카 사자의 개체 수는 40%가 감소했고, 매년 5,600마리의 사자가 트로피 헌팅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래도 트로피 헌터들의 주장을 사실이라 할 수 있을까? 영장류 학자이자 UN 평화 대사 제인 구달은 이렇게 질문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큰 상아를 가진 거대한 동물을 사냥하는 게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검정색 갈기를 가진 사자를 사냥할 수 있는지, 기린 같은 동물을 쏘고 싶어하는 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죠?"

질문은 질문이 되어 되돌아 온다. 누구나 눈물을 흘려 줄 수 있지만 땀은 누가 흘려줄 것인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가능할까.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논쟁은 계속 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동물들은 사냥을 위해 키워진다. <휴머니멀>이 던지는 질문이 참으로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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