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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다룬 '아름다운 세상', 어른의 의미를 묻다

너의길을가라 2019. 4. 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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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무엇일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은 쉽지 않다. 성년(成年)이 됐다고 해서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해서 어른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국어사전에는 '다 자란 사람'을 어른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도대체 다 자랐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몸집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숙일까. 대관절 정신적으로 다 자랐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여전히 답을 찾기 힘들다.

이 의문은 돌고 돌아 결국 개인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른일까. 어른이 되었나. 그렇다면 어떤 어른인가.' 궁색함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옆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당신은 어른인가요? 그렇다면 어떤 어른입니까?' 이 물음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삶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했기에 그런 문답은 무용(無用)했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했을 테니까. 부끄러움을 느끼기엔 얼굴이 너무 두꺼워졌다.

우리는 더 이상 '어른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다. 묻지 않으니 고민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니 잊게 됐다. 분명 우리에게도 훗날 어떤 어른이 될 거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상(像)이었을까? 불의와 싸우고, 부당함과 맞서고, 부조리를 개선해 나가는 어른. 선한 일을 위해 옳은 말과 행동을 아끼지 않는 어른. 자신의 이해보다 세상의 선을 추구하는 어른.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 최소한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어른 아니었을까.


2019년 4월, 어른에 대해, 어른의 의미에 대해 다시 묻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JTBC 금토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그 제목과는 달리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이야기 한다. 드라마는 세아 중학교 3학년 박선호(남다름)가 학교 옥상에서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다행히 생명은 건질 수 있었지만,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선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실은 무엇일까?

경찰 측은 미적지근하다. 강력계 형사 박승만(조재룡)은 타살의 의심점을 찾을 수 없다면서 선호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이라 결론을 짓는다. 학업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선호의 엄마 강인하(추자현)는 납득할 수 없다며 항의하지만, 박승만은 증거가 없지 않냐며 무시한다. 아빠 박무진(박희순)은 선호의 휴대전화의 마지막 발신 장소를 찾아 제시하지만, 경찰 측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학교 측은 시건을 축소/은폐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외적 평가가 떨어질까봐 전전긍긍이다. 이사장 오진표(오만석)는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할 것을 지시하고, 무사안일의 교장 명선(명계남), 권력지향의 교감 배상복(정재성)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쉬쉬하기에 바쁘다. 선호의 담임 이진우(윤나무)는 학교 측의 대응이 불만스럽지만, 그렇다고 반기를 들 배짱까진 없다. 학부모들은 하루빨리 면학 분위기를 잡아달라 아우성이다.

무진과 인하는 아들의 추락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동생 박수호(박환희) 역시 사건 당일 오빠의 동선을 좇는다. 가족들은 경찰의 '단순 자살 미수'라는 허술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소 선호에게 가족 관계나 교우 관계에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선호의 추락의 원인, 그 배경은 바로 '학교 폭력'이었다.

선호의 친구들인 조영철(금준현), 이기찬(양한열), 나성재(강현욱)는 선호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고, 그 폭행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갖고 있었다. 선호의 절친인 오준석(서동현)은 자신은 유행하는 놀이를 가르쳐 준 것뿐이라며 선긋기에 나섰지만, 그 역시 이번 사건과 결코 무관치 않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발각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이를 위해 머리를 맞댈 뿐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경찰과 학교뿐만 아니라, 곳곳이 포진해 있는 어른들은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 영철의 엄마 임숙희(이지현)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인하와 절친한 사이임에도 말이다. 준석의 아빠는 학교 이사장인 진표이고, 엄마 서은주(조여정)는 인하와 막역한 사이이다. 은주는 그의 아들이 이 사건에 깊이 개입돼 있다는 걸 알지만 역시 입을 닫는다.

"당신이 지금 우리 수호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어른을 불신하게 만들고, 친구를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들었어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는 관심조차 없다고, 아니 오히려 재미난 구경거리일 뿐이니까 아무도 믿지 말라고, 세상엔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댔던 악의적인 말들이 우리 애 마음을 할퀴고 짓밟고 헤집어 놨다고요!"

이렇듯 한 학생의 추락 사고가, 그것도 교내에서 발생했음에도 사회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방관자가 됐다. <아름다운 세상>은 학교폭력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비춘다. 그 중심에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있음은 자명하다. 게다가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애쓰는데, 주변 사람들은 헛소문을 퍼뜨리며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힌다.


뒤에서 악의적인 뒷말을 지어내는 학부모를 향한 인하의 일갈에 속이 시원해지다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저 무책함한 어른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컥함은 그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군상의 어른들 가운데 내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긴 쉽지만, 내 이해관계가 결부됐을 때 그 태도를 결연히 유지할 수 있을까. 대답은 쉽지 않았다.

KBS2 <부활>, <마왕>, <상어>의 김지우 작가, 박찬홍 PD의 또 하나의 합작품인 <아름다운 세상>은 깊이 있는 주제의식에 폭넓은 화두를 던져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시청률도 1회 2.178%, 2회 2.926%로 상승 곡선이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과 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문제 등을 심도있게 그러냈다. 믿고 보는 JTBC 드라마답게 감각적인 연출과 탄탄한 극본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몰입도가 높다.

ㅔ연 <아름다운 세상>이 앞으로 그려낼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또 하나의 명품 드라마가 이제 막 시작됐다. 물론 불편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던 '어른의 의미'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현실 앞에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꼭 봐야 할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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