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평화집회로 끝난 2차 민중총궐기, 시민은 위대했고 정부는 머쓱했다

너의길을가라 2015. 12. 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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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광장(廣場)은 다시 열렸고, 그 자리에 다시 모인 성숙한 시민들은 '평화 시위'를 통해 스스로 위대함을 증명해보였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억압과 탄압 속에 성장한다는 진리를 또 한번 각인(刻印)시켰다. 한껏 초라해진 건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었다. 이번엔 어떤 합리화(合理化)의 도구를 꺼내들지 내심 궁금하다. 


지난달 14일 열렸던 '1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위중한 상태에 놓인 농민 백남기(68) 씨를 둘러싼 논란은 책임 공방으로 번졌다. 경찰의 강경진압 탓이라는 비난이 제기됐고, 반대편에선 폭력 시위가 그 원인이라고 맞섰다. 정부는 이참에 '불법 · 폭력 시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뜬금없이 '복면=폭력시위'라는 등식을 꺼내들었다. 이른바 '복면금지법'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2차 민중총궐기'를 예고했지만, 경찰은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고 주요 도로에서 이뤄져 교통소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범대위)'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민노총이 1차 집회를 주도한 세력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2차 집회를 금지하면 앞으로 민노총이 주최하는 모든 집회는 허가될 수 없다"며 경찰의 집회 금지를 뒤집었다.


<동아일보>는 '2차 민중총궐기' 폭력으로 흐르면 법원이 책임지라 는 사설을 통해 "'평화적 집회' 허용을 결정했던 판사들이 광화문에 나와 폭력 현장을 눈으로 보고, 도로가 막혀 차 안에서 몇 시간씩 갇혀봤어도 이번에 같은 결정을 했을지 의문이다. 만일 오늘 집회가 또 폭력으로 번진다면 그 책임은 법원이 져야 할 것"이라며 법원의 결정에 수준낮은 비판을 가했다. '징징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법원의 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헌법상에 명시된 집회 ·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만약 '불법 · 폭력 시위'가 발생한다면 공권력을 동원해 체포하거나 진압하면 되지 않느냐는 명시적 선언과도 다르지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폭력)을 가지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 자체를 불허한다는 것은 '과잉' 대응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도로가 막히는 불편함을 견디는 성숙함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것을 언론사에서 사설을 쓰는 자가 모르고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런 자들이 휘갈겨 쓴 글이 이 사회를 떠돌아다니는 것을 '얼핏'이라 할지라도 읽게 되는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도 민주주의의 기본이므로 우리는 인내하고 또 인내할 수밖에 없다. 어제 하루동안 위의 글을 쓴 사람은 얼마나 낯이 뜨거워졌을까? 그런 부끄러움을 알기는 알까?




서울시청 앞 광장엔 주최 측 추산 5만 명(경찰 추산 1만 4,000명)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복면' 대신 '가면'을 착용했다. 이색 가면도 눈에 띄었고, 각종 퍼포먼스가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불통의 상징이었던 '차벽'은 사라졌고, 살인적인 물대포도 없었다. 시민들은 '평화 집회를 열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경찰도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협조한 덕분이었다. 


손에 꽃을 든 채 경찰과 시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우리는 이렇게 얼마든지 평화적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으로도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고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를 더 성숙시켜 나가는 원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정웅기 대변인은 "서로간에 미워하고 편 가르는 것이 팽배한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평화로운 집회 문화 만드는 계기 마련 처음에는 정부가 평화 집회 보장에 대한 뚜렷한 답을 주지 않았으나 오늘 차벽을 설치하지 않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뚫린' 공간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들려주었다. 암울한 시대, 우리의 민주주의는 죽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시민들은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 같다.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복면(가면)'=폭력시위'라고 길길이 날뛰던 정부와 여당은 머쓱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화답'이다. 더 이상 시민들의 권리를 짓밟는 시도를 멈추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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