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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편집된 시험 얘기 꺼낸 '알쓸범잡', 김상욱은 '능력주의'를 꼬집었다

너의길을가라 2021. 7. 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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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tvN <알쓸범잡> 최종회가 방송됐다. 정말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이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부터 일상 속의 범죄까지 다양하고 심도 있는 주제들을 다뤘다. 첫회 2.634%로 시작했던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은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13회에는 3.696%까지 올랐다. 매우 고무적인 흐름이었다.

총결산을 하는 마지막 회는 아무래도 시청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라 2.37%로 마무리됐지만, 범죄를 주제로 나눈 박지선 교수, 정재민 사무관, 김상욱 교수, 장항준 감독의 진심어린 대화는 충분한 울림을 줬다. 소위 이름값 있는 출연자 혹은 이야기꾼의 부재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충실한 공부가 바탕이 된 알짜 상식과 강약을 조절한 그들의 입담은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 경기까지 <알쓸범잡>이 방문했던 여행지는 총 81곳이었다. 그 곳들에서 다룬 사건은 무려 178건에 달했다.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 3위는 국내 3대 미제사건인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었고, 2위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두 얼굴'이었다. 1위는 305만 건(방송 당시)의 조회수를 기록한 '강력범죄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다룬 영상이었다.


출연자들이 꼽은 최고의 1분은 어떤 장면일까. 김상욱 교수는 대구 편(5회)에서 '영남대로 과거길'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걸어야 했던 길이다. 김 교수는 당시의 시험 부정 이야기를 통해 조선시대 과거제도부터 오늘날 입시 부정까지 시험 제도의 의미를 묻고 싶었지만 통편집돼 아쉽다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 제도는 고려 광종 때 도입한 관리 선발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약 1,000년 동안 유지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 변질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부정행위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숙종실록'에는 부정행위자가 나와 시험 전체를 무효로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서양인에게는 과거 제도가 생소했는데, 계몽주의가 싹트던 시기에 전해졌다. 시험이야말로 공정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시험 역사에 있어 혁명적인 발상을 시도하게 된다. 전쟁에 참전해야 했던 미국은 갑자기 많은 군인을 파견해야 했는데, 그 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인물을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대규모의 테스트를 실시하게 됐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사지선다형, 그러니까 객관식 시험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후 우리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역수입하게 된다. 1961년 군사정권은 사회 전체를 일신할 필요를 느끼고, 입시를 사지선다형으로 치르고자 계획했다. 하지만 공정할 것이라 여겼던 사지선다형 시험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1965년 중학교 입학시험의 '무즙 파동'이다. 당시 논란이 됐던 문제의 핵심은 '엿기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정답은 1번 디아스타아제였다.

하지만 4번 답안인 '무즙'이 논란이 됐다.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 디아스티아제가 많이 들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교부(현 교육부)는 1번이 답이라 발표했으나 학부모와 학생들은 4번도 답이라 강력히 맞섰다. 결국 재판까지 간 끝에 복수정답 처리가 됐다. 학부모들은 직접 무즙을 넣어 만든 엿을 가지고 법원에 찾아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도 했다.

진짜 난리는 그 다음이다. 학교 측에서 그 혼란을 틈타 복수정답과 관련 없는 몇 명을 몰래 끼워 합격시켜버린 것이다. 그 몇명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권력자의 자녀들이었다. 복수정답 해프닝은 권력형 비리로 번지고 말았다. 1967년에도 미술 문제 복수정답 인정 여부를 놓고 '창칼 파동'이 있었다. 결국 1969년에 중학교 입시 교육은 폐지되고 평준화로 전환되었다.

2004년에도 대규모 입시 부정 사건이 벌어졌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가담한 계획적인 부정 시험이었다. 일부 학생들이 휴대 전화를 몸에 붙여 시험을 보며 답을 모스부호로 전송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수신조(본부)가 전달된 모스부호를 취합해 해석한 후 문자로 답을 공유했다.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처럼 입시 제도의 폐단은 시험이 존재했던 모든 시대에 존재했다.

"능력이야말로 꼭 중요한 것이고 능력을 검증하는 공정한 잣대가 시험이다라는 오랜 믿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닐까." (김상욱 교수)


김상욱 교수가 시험과 관련한 주제를 꺼낸 이유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가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과연 그 시험이 사람을 뽑는 적합한 방식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참고로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상욱 교수는 우리가 능력만 중요하다고 할 때 생기는 오류는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고 덧붙였다. 더 나쁜 건 경쟁의 승자들에게 오만함을 키워준다는 점이다. 자신이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이므로 누릴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장된 능력주의는 사회 불평등을 허용하는 요인이 된다.


박지선 교수는 "마이클 센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의 핵심이 능력 안에 이미 그 사람의 배경과 경제력과 공정하지 못한 기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능력주의는 사회적 세습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사람의 능력은 단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나 부모의 경제력, 문화자본 등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혹자들은 사법시험이 공정한 제도였다며 한사코 부활시키라고 주장하지만, 오롯이 시험에 몰입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을 지원해줄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공무원 시험이라고 다를까. 학원비와 고시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하는 공시생과 부모의 안정적 지원을 받는 공시생이 어찌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할 수 있는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고 있는 능력주의 논쟁에는 능력에 오해와 맹신이 혼재되어 있다. 이 대표는 공정한 경쟁 규칙이 있고 실력만 있으면 할당제와 같이 '특정 사람과 집단을 잠정 우대'하는 장치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마치 공정에 대해 갈망하는 2030세대의 심정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불공정의 늪으로 인도하는 셈이다. 사다리를 모두 걷어차면서 말이다.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하루 세끼를 푸짐하게 먹고 자랐다면, 우주에 정의라는 거대한 안전망이 없다면, 인간이 서로를 위해 그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운이 없었다면 나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내가 아무 이유 없이 하루 세끼를 푸짐하게 먹고 자랐다면" 그건 운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칼 세이건의 딸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주에 정의라는 거대한 안전망이 없다면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쓰고 있다.

'능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개인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갖춘 능력에는 필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능력은 여러가지 운에 기반한다. 능력이 결국 운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겸허한 삶을 살게 한다.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겸양이 아닐까. 공정은 모든 종류의 차별을 없애 나가는 과정이고, 평등은 차별이 없을 때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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