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시사교양

탄소중립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너의길을가라 2021. 5. 31. 08:01
반응형

"어른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미래 세대에 남은 시간은 고작 18년 157일뿐.'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 운동가 크레타 툰베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연설에서 기성세대와 정치권을 향해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실제로 지난 100년 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도 이상 상승했다. 지금 추세라면 30년 뒤인 2050년의 지구 평균 기온은 2.4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자연현상의 변수까지 감안한다면 3도 이상 상승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전 세계 지표면의 24~34% 사막화되고, 특히 중남미, 남부 유럽, 남아프리카, 중국의 피해가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온실가스 문제는 결국 세계 공통의 문제이다. 이를 실감한 세계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저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 2020년 1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언을 했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전환이 친환경이나 재생 에너지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권고 수준이었다면, 탄소중립 비전 선언을 통해 반드시 이루겠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이다. 이제 의무의 차원에 접어들었다. 탄소중립은 무엇이며,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막상 대답은 쉽지 않다.


SBS <물은 생명이다>는 2050 탄소중립 강연 시리즈를 준비했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이유진 연구원은 1부 '세상의 판이 바뀌었다(23일 방송)'와 2부 '정의로운 전환(30일 방송)'을 통해 '2050 탄소중립'에 대한 우려와 전망을 제시했다. 이 연구원은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선 현재 탄소 배출량을 10년 안에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얼마 전 프랑스는 기차로 150분 거리는 비행기 운항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프랑스의 초강경 기후대책법을 살펴보면 공립학교는 일주일에 최소 1회 채식 메뉴 제공하고, 에너지 등급이 낮은 주택은 2028년부터 임대 금지한다. 또, 스웨덴의 페르 볼룬트 환경부 장관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스톡홀름의 브롬마공항을 폐쇄 후 그 부지에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건 한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인 반면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OECD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전력 생산의 40.7%가 석탄 발전소로 이뤄진다. 자동차 대수는 2,437만 대인데, 전기차는 15만 대에 불과하다. 산업단지는 1,225개에 달한다.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36%에 이른다.

이유진 연구원은 기후 위기 대응을 준비하지 않으면 산업과 일상에 엄청난 충격이 올 거라고 경고한다. 가령, EU(유럽연합)의 배터리시장 환경규제 도입과 관련해 탄소발자국 저감 노력이 시급하다. 헌데 유독 아시아에서 생산한 배터리의 탄소발자국이 높다. 화력 발전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데다 탄소집약도가 높은 한국은 당장 숨통이 조여오는 상황에 직면했다.


탄소중립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불편하지만 직면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내연기관 생산판매 금지 연도는 어떻게 결정할까? 한국 사회 석탄 발전 모두 폐쇄 시점은 언제일까? 탄소중립 사회에서 없어지는 일자리 대책은 마련되어 있나? 탄소중립 사회에서 교육, 세금, 에너지 가격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한국 사회에는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

배출한 탄소를 흡수해서 제로로 만드는 게 탄소 중립일까? 이유진 연구원은 배출한 탄소를 흡수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면서 탄소 중립의 기본 전제는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87%에 에너지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배출원 기준으로 보면 산업이 54%을 차지한다. 따라서 기업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진 연구원은 한국이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있음에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에는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건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기후변화대응 계획의 총괄조정기능 부족 때문이다. 지자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유진 연구원은 지자체 내 온실가스 감축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려면 재생 가능 에너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소규모 지역 생산, 소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에서 지자체와 시민 사회가 중요한 역할로 등극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역 분산형 에너지 정책을 실행하면서 지역 내 갈등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지역 기반 재생 에너지 생산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망, 전력 수요 관리, 전기요금 등 해결과제가 많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취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힌 수요 및 소비량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 변화, 인식 변화 등이 필수이다.

이유진 연구원은 진정한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 및 비용 절감과 함께 살기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부는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증대 방안인 웨더라이제이션(WAP, Weatheriztion Assistance Program) 지원 사업을 통해 에너지 효율은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이는 한편 공익적 일자리를 창출했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소외 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쇠퇴하는 산업 및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유진 연구원은 그린 뉴딜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웨더라이제이션 지원 사업처럼 일자리, 경제, 공간 등을 아우르는 융합 정책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총괄적인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한쪽에서는 탄소를 줄이고, 다른 쪽에서는 탄소를 늘리는 주먹구구식 운영으로는 절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또, 탄소중립 정책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판이 바뀌었음에도 이를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어지기 전에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체계적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2050 탄소중립은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이자 국제질서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고,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자녀들의 미래를 훔쳐서는 곤란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