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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현실 풍자극 <인생게임 - 상속자>가 정규 편성이 돼야 하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6. 7. 2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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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1 대 99 사회, 수저계급 등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어들이 가슴 아팠다. 교양 피디로서 이런 것을 건드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최삼호 PD)


그야말로 기가 막힌, 절묘(絶妙)한 예능이 출현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의 제작진과 그들의 페르소나(persona)인 김상중이 마스터(MC) 역할을 맡은 <인생게임 - 상속자>에 대한 감상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9명의 청년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이른바 '수저 계급론'을 접목시킨 예측불허의 '인생 게임' 속으로 몰아넣었다. 


'관찰'이라는 리얼리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적 야심을 잔뜩 드러낸 <상속자>는 적나라하고 잔혹했다. 물론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참혹한 것이지만, 그 비릿함이 TV를 통해 재현되자 마음이 제법 씁쓸했다. 혹자들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을 굳이 'TV'를 통해 재확인할 필요가 있냐, 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가 있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게임 안에 들어와 있으니 통쾌함을 느끼면서 공감한 게 아닐까요?" (최삼호 PD)


<상속자>는 9명의 참가자가 '숟가락'을 뽑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운(運)'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출생'이라는 '운'으로 신분이 정해지는 현실에 대한 풍자다. '금수저'를 뽑은 상속자가 집사를 선택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눈다. 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의 권한을 갖는다. 가령, 집세를 높인다거나 식사와 음료 등의 비품의 가격도 책정한다. 한마디로 생사여탈권이 주어진다.


그렇다고 끝까지 '운'만으로 상속자를 정하는 건 아니다. 둘째 날부터는 상속자를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3박 4일 동안 '투표'를 통해 매번 다른 상속자를 선출한다. 단체 미션과 개인 미션 그리고 부업(구슬 팔찌 꿰기) 등으로 코인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마지막 날까지 가장 많은 코인을 모은 참가자가 최종 우승자가 돼 1,000만 원의 상금을 가지게 된다. 자, 이제 게임은 시작됐다. 



"천만원은 내게 너무나도 큰 돈이다. 알바는 닥치는대로 다 한다. 막노동도 해봤다" (샤샤샤)


가장 돋보였던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출연자는 '샤샤샤'였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며 현실 속에서 온몸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그는 1,000만 원의 상금이 절실했다. 그저 재미로 참가한 준재벌 3세인 '강남베이글'과는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델, 작곡가, 웹툰 작가 등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다른 출연자들과도 눈빛이 달랐다. 


그래서 이해가 됐다. '샤샤샤'가 프로그램 속에서 선택한 '파격'들이 말이다. 그는 '코인 양도'를 통해 상속자가 바뀔 때 절반의 코인을 양도해야 한다는 룰을 재치있게 비껴갔다. 이 때문에 단 하나의 코인만을 상속받은 '불꽃남'은 기분이 단단히 상했고, '샤샤샤'와 그와 공모했던 '네버다이'를 '비정규직'으로 내려보내면서 공고해 보였던 '가진 자들의 동맹'은 금이 갔다. 



'샤샤샤'는 개인 미션에서 승리해 보상을 얻기 위해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애처로운 그의 모습에서 현실의 고단한 청년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나 고작 '무상급식' 카드를 얻는 데 그치자 "역시 나는 '똥손'이었다"며 자신의 불운을 탓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상중이 "나는 '똥손'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늘 '금손'이다 라고 생각해야 정말 '금손'이 될 수 있다"며 애써 위로를 건넸지만 공허한 덕담에 그쳤다.


사람을 잃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립각을 세워서라도 코인을 쟁취해야 했다. 그 표독함이 잠시 미워보였지만, 다시 그를 응원하게 됐다. 마지막 날에는 밤을 새워 구슬을 꿰 팔찌를 만드는 부업에 매달렸다. 20개를 만들면 코인 1개를 주는 팔찌를 100개나 완성했다. 그래, 자격은 충분하다. 이쯤 했으면 우승은 '샤샤샤'가 차지했겠지? 문득 불안해졌다. '노력'만으로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다? 현실이 그러했던가? 아, 내가 너무 순수했나?



"어느 순간부터 1등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채 진심으로 동료 참가자들을 대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강남베이글)


안타깝게도 '샤샤샤'는 결국 승리하지 못했고, 우승은 1,000만 원이 가장 '가벼웠던' 준재벌 3세 '강남베이글'에게 돌아갔다. 어찌보면 최악의 결과가 제시된 것이다. 이를 두고 <상속자> 제작진은 "현대 경제학은 모든 경제 활동의 바탕에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하고 있다. 인생 게임 상속자 또한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게임의 우승자는 다른 이의 몫을 가장 덜 빼앗은 참가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흘 동안 불과 아홉 명이 모여 이룬 이 작은 세상에서 그들은 동료를 만들고, 다투고, 또 화해하면서, 끝내 게임의 명제 자체를 무너뜨렸다"고 덧붙였다. 동의할 수 있을까? 물론 '강남베이글'은 다른 이의 몫을 가장 덜 빼앗은 참가자였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현실의 여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우승 상금 1,000만 원은 없어도 그만일 돈이었으므로 그는 이 싸움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을 수 있었다.



<상속자> 제작진은 마치 '인간성'에 '해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게임의 명제를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비극적인 현실의 개입'이었다. 우리는 게임에서조차 기존의 숟가락이 정해준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우승을 해서 상금을 획득하면 학자금 대출을 갚고 싶다면 '샤샤샤'의 삶은 '인생 게임'에서조차 외면 당했다. 그 외면에 동참한 8명의 구성원들은 모두 이 제로섬 게임에서 패배했다. 


역설적으로 이 패배 때문에 파일러 프로그램인 <상속자>가 정규 편성이 되어야만 하는 것 아닐까? 한 번쯤 이 공고한듯 보이는 피라미드를 제대로 뒤엎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1부에서 3.3%(닐슨 코리아 기준)로 시작했던 <상속자>의 시청률은 2부에선 4.2%로 상승했다. 높다고 할 수는 없는 시청률이지만,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가능성, 그리고 화제성을 높고 볼 때 충분히 정규 편성을 논의해 볼 수 있다. 


정규 편성까지 가기 위해선 이미 노출된 문제들(지나치게 적은 상금, 다소 짧은 기간, 멤버 구성에 대한 고민, 패턴의 단조로움)을 보완해야 겠지만, 시즌제로 진행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를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되짚고, 더 나은 사회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논의의 지평을 열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역시, 시원한 한방의 뒤집기를 보고 싶은 마음도 빼놓을 수 없다.


P.S.  <상속자>는 그 모티브를 보드게임인 '수저게임'에서 얻고, 아이디어를 차용했음에도 '방송국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로열티를 지급하지도 않았다. 게임 개발자인 최서윤 씨는 “(PD가) 대신 프로그램 말미에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음을 밝히고, ‘도움을 준 최서윤씨께 감사를 표합니다’라는 멘트(문구)를 넣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SBS 측은 먼저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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