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장그래 죽이는 고용노동부 광고에 출연한 장그래?

너의길을가라 2015. 3. 27. 07:30
반응형

 

'장그래'가 '장그래'를 양산하는 '고용노동부' 공익 광고에 출연했다고?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은 tvN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임시완이 고용노동부(Ministry of Employment and Labo)의 공익 광고에 출연한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임시완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비판의 대상에 오른 까닭을 말이다. 자기 딴에는 좋은 취지의 공익 광고에 출연했다고 여기고 있을 텐데 말이다.

 

- 구글 이미지 검색 -

 

화들짝 놀랐을 것이 분명할 임시완은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봤을 것이다. 몇 개의 기사(그래, 어떻게 그 광고에 출연할 수 있니)를 꼼꼼이 읽어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혹은 무릎을 탁 치며),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실수에 대해 깨달았을 것이다. '장그래'를 응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장그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와 노동계는 정부의 비정규직 종압대책안, 이른바 '장그래법'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18일에는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가 발족했고, 다음 날(19일)에는 임시완을 내세운 고용노동부의 광고가 방송과 신문 등에 등장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작가와 <미생> 속 '장그래'인 임시완이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그래 살리기' 측은 윤태호 작가의 허락을 받고 웹툰의 '장그래' 캐릭터를 플래카드 등에 활용했고, 고용노동부는 임시완 측에 초상권을, CJ E&M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장그래(임시완)'를 광고에 게재했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미생> 속의 '장그래'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비정규직 '장그래'가 양 쪽에 동시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괴상한 엇박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고용노동부의 공익 광고는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된다"는 문구를 담고 있다. 당연히 임시완은 이 광고 속에서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미생>의 장그래로 등장하는데, 장그래의 내레이션으로 읽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일명 '장그래법'이라고 명명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다.

 

이름처럼 비정규직에 대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정부가 마련한 대책의 핵심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방식인 비정규직을 없애거나 적어도 (조금씩이라도) 줄여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2년동안 더 비정규직으로 살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2년을 더 살라고 한다면, 과연 '장그래'는 얼씨구나 하면서 두 손 들어 환영을 보낼까? 청년 일자리 문제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당사자인 청년유니온은 24일 성명을 통해 "장그래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희망고문'을 2년 더 연장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또, 청년유니온은 "비정규·계약직 채용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정부에서 어처구니없게도 비정규직 신분에서 희망고문을 2년 더 연장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이 실현되면 비정규직 청년들은 24개월로 모자라 48개월을 꽉 채워 쓰이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버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교묘하고 몰염치한 행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장그래를 위한 것처럼 홍보하는 것인데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누가 봐도 장그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당 정책은 아직 장그래 보호법인지 양산법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장그래 살리기' 관계자)

 

임시완이 앞서 살펴본 내용들을 세세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저 고용노동부가 청년 일자리와 관련한 공익 광고를 찍자고 러브콜을 보내자,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을 것이다. 혹은 소속사가 '제멋대로' 결정한 일일 수도 있고, 선배인 황정민도 참여한다는 소식에 두말 않고 참여를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들을 참작(參酌)한다고 하더라도, '장그래'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광고의 내용과 맥락을 살피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임시완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미생>속 '장그래'에 대한 동질감과 공감 때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이것이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시완이 '장그래'를 연기하기 위해 역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보다 깊은 이해를 하고 있을 사람이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라는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윤 작가는 지난해 12월 31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장그래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 분들이 만화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만화를 보셨다면 어떤 의도로 보셨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쩜 이렇게 만화와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을 만들어서 '장그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고용노동부'라는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노동고용부가 아니라 왜 고용노동부일까? '네이밍(naming)'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보다 '고용'이 앞서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고용노동부가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자'의 편에 서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어느 쪽의 입장을 더 대변하고 있는지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본다면,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현(現) 정부 하의 '고용노동부'가 기획한 광고에는 아예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이 '낚시'에 걸리지 않은 현명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이름이 바뀐 건 2010년으로 MB정부 시절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일자리 문제 등 고용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의지를 표시하기 위해 노동부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나?

 

"2년만 참으면 정규직으로 바꿔줄게"가 "참는 김에 2년 더 참아봐"로 바뀌었다. 달라진 것은 없다. '장그래'를 향한 희망고문은 계속되게 됐다. 그런 취지의 광고에 '장그래'가 출연한 것은 '낚시'에 걸려든 것이라 할지라도(그렇기 때문에 더욱) 씁쓸한 일이다.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이해가 되지만, 이번에는 '모르니까 매번 당하는 것'이라는 말에 좀더 무게를 싣어주고 싶다. 그래도 가장 나쁜 건, '장그래'를 이용해 '장그래'를 양산하는 정책을 홍보하는 고용노동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