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자발적 불매운동의 뚜렷한 한계..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너의길을가라 2013. 5. 1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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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대표이사는 왜 울었을까?


남양유업에 대한 자발적 불매운동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남양유업' 사태를 점검하는 글로는 (1차적으로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앞선 글들을 통해, 남양유업에 대한 자발적 불매운동의 영향력이 대략 매출 10~15%가 감소하는 정도였음을 확인했다. 품목별로는 우유의 판매량이 가장 많이 빠졌고, 다음은 커피였다. 분유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먹는 것은 갑자기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감소량이 5% 이내로 가장 적었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다음 글에서는 남양유업이 내세운 대책 중의 하나인 '예절 학교'에 대해 짚어봤다. 그것이 실제로는 乙을 통해 乙을 상대하는, 이른바 이을제을(以乙制乙)의 교묘한 속임수였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향후의 흐름, 앞으로의 문제들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출의 10~15% 감소는 남양유업에게 절대적인 타격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85~90%의 매출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앞으로 '자발적 불매운동'이 더 확산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하는 케이스가 생겨날 테고, 남양유업의 '예절 학교'등의 개선책(?)에 현혹된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태도'는 그리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피곤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지난 5년 동안 정치의 영역에서 절실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反MB' 라는 구호가 잘 먹혀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촛불집회가 활활 타오르던 시기, 즉 MB의 임기 초기였다. 하지만 '反'의 힘은 제한적이었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反MB'는 MB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정적인 힘이 갖는 근원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反MB'를 말하기 위해서는 'MB'를 떠올리고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 흔히 인용되는 예이지만,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자발적 불매운동'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안티조선'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운동은 일정한 한계를 짊어지고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안티조선'을 외치기 위해서는 결국 '조선일보'를 말해야 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의 힘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2011년 8월, 이윤재 회장의 청부 폭행 사건과 비자금 조성 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피존 불매운동'이 벌어졌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피죤의 판매량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지만, '불매운동'까지 겹치면서 결국 30년 동안 지켜왔던 업계 1위의 자리를 '샤프란'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고 피죤이 망한 것은 아니다. 1위 자리는 내줬지만 지금도 '피죤'은 아주 잘 팔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2012년에는 '농심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맛'에 길들여진 관성은 매우 질기고 강력했던 모양이다. 현재 '농심'은 업계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처럼 '불매운동'은 그 속성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법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잊게 마련이다. 기업은 이 틈새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강하게 뭉치지 못하고, 곧바로 와해되는 乙들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지만, 마냥 탓만 할 수는 없다. 무엇에 '반대'하는 것, 어떤 대상에 '부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국 막다른 길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필자는 적절한 시점(지금쯤이 아닐까 싶다)에서 기존의 '불매운동'에서 한 단계 진화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진화를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착한 기업'이 커밍아웃을 해야만 한다. (아니면 반대로 시민들이 '착한 기업'을 만들어내거나..) '서울우유'나 '매일우유' 또는 '연세우유'라도 좋다. 그 외의 지방에 뿌리를 둔 회사라도 상관없다. 이들이 '우리는 밀어내기 등의 나쁜 관행을 완전히 없애고, 깨끗하고 윤리적인 경영 방식을 통해 상생의 길을 걷는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으로 인해 현재 간접적인 이익을 보고 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간접적 이익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들이 한 발 치고 나와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마케팅'이 어디에 있겠는가? 

'착한 기업'과 '착한 소비자'가 만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은 더 이상 편법이나 꼼수를 부리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러한 기업이 있다면 소비자들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함으로써 그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그러한 상생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선순환의 구도가 안착이 되어야만 한다. 언제까지나 '자발적 불매운동'에 기댈 수는 없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달릴 수는 없다. 미움은 결국 그 자신도 갉아먹기 마련이다. '애정'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反MB'는 우리는 지치고 퀭하게 만들었지만, 대안으로 떠오른 '문재인'과 '안철수'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또, '反MB'를 외칠 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솟구치지 않았던가?

소비자들은 '착한 기업'의 커밍아웃을 기다린다.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 바통은 '기업'에게 돌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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