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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캐릭터 '박복자' 만난 김선아, 연기가 곧 품격이 되다

너의길을가라 2017. 8. 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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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우와 진실된 연기는 말도 안 되는 것도 있을 법하게 만드는 힘이다. 저는 배우들의 연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JTBC <품위있는 그녀>의 김윤철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막장 요소가 짙은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없이 '배우들의 힘'이라 대답했다. <품위있는 그녀>의 성공은 백미경 작가의 찰진 '대본'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연과 조연을 가릴 것 없이 캐릭터에 몰두해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대본이 좋은 배우를 만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란 점에서 <품위있는 그녀>의 궁합은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우아진'이라는 완소 캐릭터를 탄생시킨 김희선을 비롯해서 밉상 남편인 '안재석'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는 정상훈, 복수심에 불타는 재벌가의 첫째 며느리 '박주미' 역의 서정연 등 <품위있는 그녀>의 배우들이 펼치고 있는 열연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군계일학을 꼽으라면 역시 박복자 역의 김선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김선아의 연기가 개연성'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의 다양한 얼굴과 표정, 그리고 폭넓은 감정 연기는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는데, '대체불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날 우아진 당신처럼 만들어줘. 그럼 나도 회장님 살릴게."

"까불지 마. 한번만 더 까불면, 널 갈아서 김치 담글 젓갈로 쓸 거니까. 갈치 대가리를 보내? 미치지 않고서는."


박복자는 우아진 앞에 섰을 때는 한껏 주눅 들어있다. 쭈뼛거리고 머뭇거린다. 목소리 톤도 완전히 달라져 있다. 가장 놀라운 건 '눈빛'이다. 자신이 동경하는 이상형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다양한 감정이 묻어 나온다. '저 여자처럼 되고 싶다'는 부러움과 '저 여자를 넘어서고 싶다'는 시기와 질투가 뒤섞여 굉장히 묘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한 가지 감정을 담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여러가지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는 건 얼마나 버거운 일이겠는가. 그 어려운 걸 김선아는 해내고야 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우아진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을 대할 때 박복자의 눈빛이 180도 달라지는데, 김선아는 이 변화를 전혀 이질감 없이 연기해낸다는 것이다. 특히 풍숙정의 사장인 오풍숙(소희정 분)과 한판 붙을 때의 살벌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또,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어리석은 자녀들을 쏘아붙일 때의 카리스마는 왜 이리 강렬하고 짜릿한지 속이 다 시원해진다. 이처럼 김선아는 박복자의 두 얼굴을 천연덕스럽게 묘사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설득시켜 버렸다. 

 

 

 

박복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캐릭터다. 김선아는 "촬영하면서 복자의 복잡한 감정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박복자는 단순히 선과 악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그는 가지지 못한 부(富)에 대한 갈망을 지녔고, 상류층에 편입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뿐이라면, 박복자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과감함을 지녔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안태동 회장에게 접근해 그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주식을 증여받아 사모펀드에 넘기고 현금을 차지했다.


여기까지라면 김선아의 고민이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거머쥔 박복자는 상류층 행세를 하며 살아가지만, 왠지 모를 허무감에 시달린다. 서울의 야경을 내려보며 홀로 소주병을 기울이던 그는 "서울 사람들, 나 돈 많아유. 나 부자여유. 근디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아유. 뭘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해져유."라며 오열한다. 악독하게만 보였던 박복자가 처연하게 느껴지고,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그건 우아진의 말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박복자를 완벽히 설명해 냈던 김선아의 공이었다. 

 

 

<품위있는 그녀>를 보면서 '김선아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라며 수없이 감탄했다. 김선아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어수룩한 모습뿐만 아니라 내재된 욕망과 탐욕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모습까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변화를 그려냈다. 또, 박복자라는 한 인물의 흥망성쇠를 야무지게 연기해냈다. 솔직히 말하면, 김선아는 2005년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한동안 뇌리에서 잊혔던 배우였다. 김삼순'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그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어 발목이 잡힌 케이스라고 할까.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딱히 눈에 띠지 않았다. 2009년 SBS <시티홀>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다. 개인적인 슬럼프도 겪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품위있는 그녀>라는 작품을 만난 김선아는 그야말로 '박복자'와 혼연일체가 돼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잠재돼 있던, 발휘할 수 없었던 능력을 발휘한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김선아는 '김삼순'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박복자'로 또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김선아의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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