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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아니 블로거 '소길댁'을 응원합니다

너의길을가라 2014. 7. 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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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여기가 조금 좁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직 서툴지만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놀러오세요"


지난 5월 29일, 이효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140자의 한계, 더 깊고 따뜻한 소통에 대한 바람. '소길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효리는 '소길댁'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이는 현재 그가 거주하고 있는 제주도 애월읍 소길리에서 따온 것이다.)



- 출처 : 이효리 블로그 (http://blog.naver.com/hyori79lee) -


이효리는 블로그를 개설한 후, 꾸준하게 자신의 일상을 블로깅 하면서 대중과 소통했다. '조용한 제목'이라는 제목으로 아침 식단을 올리기도 했고, '개털깍이'라는 글에서는 반려견 순심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또, 자신의 친언니와 지인들의 모습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남편 이상순과의 아기자기하고 알콩달통한 일상이 담긴 포스팅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흐믓하게 만들었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만 명의 방문자가 '소길댁'을 찾았고, 블로그를 시작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총 방문자 수가 (7월 18일 기준) 800만 명을 넘어섰다. 그가 글에서 언급했던 '것(가령 렌틸콩 등)'들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게다가 이효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트렌드세터(trendsetter)답게 한물갔다고 하는 '블로그'마저도 유행을 시켰다. 이효리의 뒤를 이어 홍진영, 박지윤, 김희철, 정준영 등도 블로그를 개설해 대중들과의 교감에 뛰어 들었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칠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소길댁'의 방문자 수는 하루에도 수 십만 명(18일 기준 약 50만 명)에 달한다. 홍진영의 블로그가 8천여 명, 정준영 4천여 명, 김희철 4천여 명 수준(이것도 적은 것이 아니다) 것에 비하면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이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가 '소길댁'으로 향하자, 트위터에 서식하며 기삿거리를 수집하던 기자들도 '소길댁'으로 몰려들었다. 


이효리의 포스팅은 어김없이 기사화되어 포털에 쏟아졌다. 이렇게 되자 일부 네티즌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비난의 초점은 응당 '기자'에게 맞춰졌어야 했지만, 화살은 '이효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효리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어졌고, 그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네트즌의 숫자는 늘어갔다. 논란이 가중되자 이효리는 6월 11일 '모순'이라는 글을 통해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좋아해요

반딧불이는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여요

숲을 사랑하지만 집을 지어요

돼지고긴 먹지 않지만 고사때 돼지머리 앞에선 절을 하죠...

유명 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 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것도 없네요

모순 덩어리 제 삶을 고백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타이면서도 한 명의 개인이기도 한 이효리의 진솔한 고백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신을 '모순 덩어리'라고 말했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굳이 '자본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정당화시키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소길댁'을 향한 비난은 고작해야 '똥 묻은 개가 겨 묻는 개를 나무라는' 식의 자기 성찰이 결여된 유아적인 것들이 아닌가? 과연 어느 누가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모순'을 지적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또,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을 올린다'는 등의 흠집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소수의 사람들의 시기 · 질투의 발현에 불과하다. 


굳이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정 수준의 '연출'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간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특정한 장소에 갈 때 머리를 다듬고, 예쁜 옷을 입는 것 역시  자기 연출의 한 부분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또, 가급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 중에서 가장 멋진 모습'의 줄임말인 셈이다.



지난 18일 오후, 이효리는 돌연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 좀더 신중히 생각해 보겠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과도한 관심과 이에 따른 논란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심한 부담을 가졌던 모양이다. 한편, 이 소식은 '서식'하고 있던 기자에 의해 곧바로 보도됐고, 삽시간에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기사의 내용이라고 해봤자 천편일률적인 것이었는데, 논란이 됐던 결혼식 사진을 삭제(이웃 공개로 바꿨던 것으로 확인됨)했다는 내용과 앞으로 이효리가 블로그를 중단할 수 있다는 호들갑이 전부였다. 기자들이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길댁'에 항시 대기하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블로거 이효리, 아니 '소길댁'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연예인' 혹은 '스타' 이효리가 아닌 '개인' 이효리로 존재하고자 했던 그의 소박했던 시도는 단 몇 개월 만에 망가지고 말았다. 아니, 몇 개월이나 버틴 이효리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을까?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일까? 


그의 블로거 활동은 그 어떤 상업성도 띄지 않았다. 자신의 유명세를 팔아 어떤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순'이라는 글에서 나타나듯이,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었던 연예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트위터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일상을 자신을 아껴주는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자 했던 이효리라고 하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 공존이 무모하다거나 위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효리가 블로그를 폐쇄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진 않다. 신중히 생각해보겠다는 글을 쓰고, 약 2시간 뒤 "제가 이웃추가를 해야 이웃공개한 포스팅이 보이는 거죠? 서로이웃이라는 건 뭔가요?"라며 제한적 공개라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참고로 네이버 블로그는 '이웃공개'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나를 이웃으로 한 사람에게 (내 글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웃으로 지정한 사람에게만 (내 글이) 보이는 기능이다. 



- 출처 : 이효리 블로그 (http://blog.naver.com/hyori79lee) -


블로거 이효리, 아니 소길댁이 이런 고민에 빠져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연예인' 혹은 '스타' 이효리가 아닌 '개인' 이효리로 존재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안타깝게도 현재까진 실패에 가깝다. 그 실패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사회'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이러저리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씁쓸하지만, 상황이 갑자기 달라질 리는 없을 것이다. 일개 '직장인'에 불과한 기자들의 각성을 기대할 수도 없고, 대중이 지금보다 몇 단계 성숙할 것을 요구할 수도 없다. 앞으로도 기자들은 먹잇감을 얻기 위해 '소길댁'에 서식할 것이고, 일부의 사람들은 '소길댁'을 할퀴기 위해 손톱을 세운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하나의 진리는 100%를 만족시킬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아니던가? 이는 오랜 기간 연예계에 몸담았던 이효리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소길댁'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설령 그 안에 일정 부분 '자기 과시'가 들어 있다하더라도 상관 없으니 개의치 말길 바란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속물'이고, '모순 덩어리'이니까. 

이효리, 아니 블로거 '소길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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