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백종원의 골목식당' 톺아보기

"이게 공장이지, 맛집이에요?" 백종원의 일침이 초심을 깨웠다

너의길을가라 2020. 4. 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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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초심'을 무디게 하고, '본질'을 망각시키는 그 위험한 녀석의 정체는 '욕심'이다. 처음에는 모습을 감추고 아주 은밀하게 접근한다. 미리 눈치를 채고 경각심을 갖기 힘들다. 그러다 은근히 스며들기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때 욕심은 더 이상 욕심이라 불리지 않고, '손님의 요구', '효율성', '편리성' 등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시작된 것이다.

"근데, 장사를 해보니까 이런 반응이 있었답니다. 오징어 튀김만 파시잖아요? 물론 오징어 튀김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긴 있습니다만, 튀김 종류가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어떨까.."

지난 29일 방송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군포 역전시장'의 마지막 이야기로 꾸려졌다.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던 불막창집은 닭꼬치집으로 환골탈태했다. 시장족발집은 모둠내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 떡맥집은 짜장떡볶이를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워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대체로 솔루션이 끝날 무렵엔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기 마련인데, 이번 편에선 예외적 상황이 연출됐다.

문제는 역시 '욕심'이었다. 떡맥집 사장님은 기존의 오징어 튀김에 더해 다른 튀김도 판매하고 싶다는 의중을 비췄다. 이미 오징어 튀김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메뉴를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사장님을 유혹한 건 '손님들의 요구'였다. 방문 손님들이 다른 튀김은 없냐며 사장님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백종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장사를 하실 때 보면 소비자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끌려가면 안 돼요. 저건 끌려 가는 거예요. 닭꼬치집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거예요. 그 유혹에 항상 흔들리게 돼 있어요, 두 가게는."

백종원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소비자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줏대없이 끌려가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메뉴의 경우 더욱 신중해야 한다. 손님들은 다양한 메뉴를 원하기 마련이다. 오징어 튀김만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손님들의 요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부 손님들이 원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메뉴를 늘렸다가 자칫 기존 메뉴의 맛을 잃거나 겨우 익숙해진 루틴이 망가지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전율도 떨어질 게 분명하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감내할 만큼 메뉴를 늘리는 게 이득일까? 그리고 기껏 단순화 시켜 놓았는데, 애써 복잡한 운영 체제로 전환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섣부른 다양성보다 확실한 전문화가 중요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말끔한 마무리가 아니었다. 예리한 백종원은 '군포 역전시장' 내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사장님들 사이에 '욕심'이라는 괴물이 은근히 퍼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완전히 변질되기 전에 초심을 잡아둬야 한다는 걸 직감한 백종원은 강하게 쓴소리를 해서라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군포 역전시장을 '긴급점검'으로 찾고 싶지 않았으리라.


"내가 가르쳐 준 게 아냐, 이건. 이렇게 쉽게 쉽게 장사할 거면 아무나 장사하지. 음식을 이렇게 성의없게 만들면 안 돼요. 정말 장사하다 보면 유혹많아요. 유혹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야. '오늘 바쁜데, 오늘만, 오늘만' 이게 유혹이에요. 이게 유혹을 못 이긴 거야."

떡맥집은 손님들이 줄을 섰다. 사장님은 신이 나서 장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레시피였다. 주방에 들어간 백종원은 단박에 짜장떡볶이의 레시피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사장님은 백종원과 달리 양파를 잘게 다지지 않았다. 또,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서 볶았다. 백종원이 재료를 차례차례 볶았던 까닭은 풍미를 내기 위해서였는데, 사장님은 그저 손쉽게 요리를 하기 위해 그 과정을 생략했다.

물론 사장님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갑자기 손님들이 물밀듯 밀려오니 얼마나 부담이 됐겠는가. 빨리 줄을 빼야 한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조리를 하려고 했을 테고, 그게 장사의 생명력을 단축시킨다는 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백종원은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장족발집도 문제가 있었다. 사장님은 상추를 저녁에 미리 씻어 보관해 뒀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상추의 숨이 죽어 있었다. 백종원은 손님들이 신선하지 않은 상추를 보고 뭐라 생각하겠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백종원에게 그런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점심 장사도 하지 않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였다.


"이게 공장이지, 맛집이냐고요. 공장이지."

백종원이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건 이유가 있었다. 이미 사장님이 다른 족발집과 달리 족발을 식힌 후에 썰겠다는 약속을 어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는 사장님이었기에 언제든지 흔들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당장 방송의 영향으로 손님들이 몰려든다고 해서 많이 파는 것에만 열중하다보면 퀄리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오래오래 맛집으로 남는 게 중요하다.

솔루션의 마지막 날, 분위기는 사뭇 어두웠다. 김성주와 정인선은 기가 죽은 사장님들을 염려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지금 문제가 발견돼 다행이었다. 백종원의 따끔한 지적에 사장님들은 경각심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됐으니 앞으론 좀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업무와 달리 효율의 극대화가 독이 될 수 있으니, 요식업은 참으로 어려운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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