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워크맨' 일베 논란, 제작진의 해명은 왜 신뢰가 안 갈까?

너의길을가라 2020. 3. 17. 10:09
반응형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초해 진상을 파악한 뒤 (책임자를 엄정히 가려내고) 진심을 담아 용서를 빌어야 한다. '해명'이 될지 '변명'이 될지의 여부는 이런 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따라 판별된다. 그저 무작정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사과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요식행위에 불과한 사과는 결코 상대방에게 가닿을 수 없다.

지난 11일 이후 JTBC 웹예능 <워크맨> 제작진이 보여준 태도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그들이 내놓은 사과는 지나치게 성의없었다.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성실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몰랐다. 그렇지만 실수도 잘못이므로 사과하겠다.' 그동안 인터넷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논란이 발생했을 때마다 여러 방송사가 내놓았던 전형적인 변명, 거기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상황을 다시 되짚어 보자. 지난 11일 공개된 <워크맨> 42회 '부업' 편, 장성규와 김민아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인 피자 상자 접기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 비용을 정산하고 난 후 상자 18개를 더 접어야 했다. 이때 '18개 노무(勞務) 시작'이라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깔렸다. 이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을 갸우뚱(을 넘어 불쾌)하게 만들었다.

'노무'라는 단어는 일베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만큼 방송 쪽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기 쉽지 않은 조심해야 할 단어였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해당 단어를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워크맨> 제작진은 화들짝 놀라 사과에 나섰다.


"앞서 '부업'편에 사용돼 문제가 된 '노무(勞務)'라는 자막은 사전적 의미인 '노동과 관련된 사무'의 뜻으로 전달하고자 했음을 알립니다. 해당 단어를 특정 커뮤니티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중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12일 <워크맨> 측은 '노무'라는 단어가 "특정 커뮤니티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준이라는 사실" 자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명일까, 변명일까? 물론 아니라고 잡아떼면 확인할 방도는 없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순 있다. 그동안 <워크맨>은 커뮤니티 내에서 유행하는 따끈따끈한 최신 단어나 신조어, 밈(Meme, 인터넷 유행 콘텐츠)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다.

그런 신선함이 <워크맨>이 사랑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일베 용어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면 그걸 순수하게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노무'의 경우 오랫동안 문제가 돼 왔던 단어였던 만큼 일반 누리꾼들도 알고 있을 정도였기에 <워크맨> 제작진의 해명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과민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 <워크맨>의 일베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워크맨>은 '리와인드 2019' 영상에서 장성규가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통화하는 장면 도중 '노알람'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는데, 이는 일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할 때 쓰는 '노알라(노무현+코알라)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또, '다깨워슨'이라는 자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의혹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키장 편에서 '카트라이더' 게임의 부스터 아이템 'N20' 이미지를 넣을 자리에 'NO2'라는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이 또한 일베에서 흔히 하는 장난으로 지목됐다. 물론 카트라이터 초창기에 'NO2'라는 이미지를 쓴 적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굳이 초창기의 이미지를 가져 올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민속촌 편에서 쓴 '두브레이션' 역시 일베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연히' 벌어진 사건일까? 혹은 순전히 실수의 반복일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그것도 일관성 있게 벌어지는 일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단지 보는 사람들이 헷갈리게끔 좀더 교묘해졌을 뿐이다. 그저 '몰랐다'는 말로 벗어나기엔 <워크맨>은 지나치게 의심받을 짓을 많이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내야 마땅하다.

방송은 장난이 아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똑똑히 알고 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역할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MBC <리얼연애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출연 중인 김유진 PD는 현재 <전지적 참견시점>의 한 꼭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방송을 보면 제작진들이 자막 한 줄에도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시사회까지 거친다. 물론 방송사마다 제작 환경이 다르고, <워크맨>의 경우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완성된 방송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방송사와 제작진이 져야 한다. '일베 논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의심의 수준은 '몰랐다'고 말하면서 더욱 짙어진 게 사실이다.

400만을 돌파했던 <워크맨> 구독자 수는 17일 오전 10시 현재 38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19만 명 이상이 구독을 취소한 것이다. 어제에 비해 1만 명이 더 빠져나갔다. 유의미한 변화이다. <워크맨> 제작진의 좀더 성실한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방송이 시청자로 하여금 의심을 갖게 만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존재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진짜 사과를 바란다면 너무 욕심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