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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2명 출전, 현장의 목소리 외면한 김영기 총재의 독단

너의길을가라 2014. 10. 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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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스페인에서 열린 2014 FIBA 세계농구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은 '예상했던 대로' 5전 전패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어쩌면' 1승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걸어봤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세계의 벽은 높았고,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현실 인식은 뼈저리게 아팠다. 격차를 경험한 선수들은 '계속 농구를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고백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남자 농구 대표팀에게 참이었던 모양이다. 세계농구월드컵에서의 좌절에 가까운 경험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금메달로 되돌아왔다. 무려 2002년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이란 · 중국 · 필리핀보다 뒤쳐진다고 평가됐지만,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노력했고 결국 실패의 경험을 성공으로 바꿔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긴 했지만, 대한민국 남자 농구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지 않다. 지난 6일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의 분위기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이라는 쾌거에도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엄숙하기만 했다. 한 기자가 아시안게임에서 농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유재학 감독에게 한국 농구가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유재학 감독은 "몸싸움, 기술. 이 문제가 2년 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기술을 배워야 하고, 성인 농구에서는 그 기술을 펼쳐 보여야 할 시기다. 어렸을 때 기술을 안 배우고, 성인 농구에서 기술을 배우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학원스포츠 투자나 전임 감독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세계 무대를 직접 부딪치며 한계를 경험한 유 감독의 결론은 학원스포츠 투자였다. 결국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초등학교 · 중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 농구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학원스포츠가 더욱 강화 · 확충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감독의 절절한 조언임에도 정작 KBL은 이에 역행하는 정책들만 쏟아내고 있다. 정치인 출신이었던 한선교 총재의 뒤를 이어 만장일치로 추대된 김영기 총재는 위기에 빠진 한국 프로농구의 구원투수로 여겨졌다. 프로농구 출범을 이끈 초대 총재였던 만큼 농구계를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기대치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김영기 총재가 보여준 모습들은 오히려 실망감만 키워나가고 있다. 2군 리그를 폐지하고 D-리그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군 리그 폐지의 후폭풍은 당장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대학 선수들을 강타했다. 드래프트에 참가한 39명 중 21명만이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았고, 나머지 18명은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지명률은 고작 53.8%에 불과했다. 2군 드래프트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들에겐 남은 기회도 없다.


좁디 좁은 취업문. 20대 초반에 맞이하는 실업자 신세. 과연 어느 학생이 자신의 인생을 농구에 맡기고자 하겠는가? 과연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농구를 '직업'으로 삼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일 저녁 KBL은 "이사회를 거쳐 2015~2016시즌부터 2, 4쿼터에 외국인 선수 2명을 동시 기용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선수 1명의 신장은 193cm 이하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테크닉을 갖춘 193cm 이하의 외국인 선수를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부산 KT의 전창진 감독은 "프로농구 처음 시작했을 때 취지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12년 만에 금메달을 땄는데 앞으로 세대교체 부분이나 국내 선수들의 발전이 어떻게 진전될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경기 재미나 그런 것에서 어떤 변화가 올지는 모른다. 다만 예전에 처음 시작했을 때 국내 선수들이 위축되고 대학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이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는데 그런 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한국농구의 미래를 걱정했다.


유재학 감독도 "외국인 선수 2명이 온다고 해서 흥행 보장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농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과 얘기를 해보면 옛날 농구가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매년 국제대회가 열리는데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이나 활동량을 봤을 때 과연 옳은 결정인가는 의문"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점은 KBL과 김영기 총재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협회와 협회를 이끌어 가는 총재는 끊임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프런트와 감독들을 만나 현장에서 직접 느낀 부분을 묻고 들는 소통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영기 총재는 '농구인' 출신임에도 소통을 거부한 채 독단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나비 효과'라는 말처럼, 사소한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한 연쇄 반응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한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큰 남자 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5명이 뛰는 농구에서 2명이 외국인 선수로 채워진다면 한국 선수들의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농구 꿈나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최근 스포츠계를 보면 '협회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양궁 협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협회가 제정신이 아니다. KBL도 마찬가지다. 12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고,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정말 한심하고 딱하기만 하다. 지난 7일, 개막을 4일 앞둔 상황에서 개막 첫 주말 중계조차 결정되지 않았다는 뉴스는 협회의 무능함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줬다. 농구 팬들의 와르르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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