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톺아보기

왕따와 오해, 부모의 과한 애착, 이혼.. 김경란이 겪었던 아픔

너의길을가라 2021. 11. 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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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생 살면서 "너의 틀에 너무 갇혀 있어. 너의 틀을 언제 깰 거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 틀이 뭔지 대체 모르겠어요."


'김경란=아나운서'라는 등식은 그가 KBS를 퇴사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김경란이 보편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이리라. 아나운서를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김경란이 떠오른다는 정형돈이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지난 5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을 방문한 김경란은 어떤 고민이 있어 오은영을 찾았을까.

똑부러져서 실수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정작 김경란은 자신을 허술하고 말도 두서 없이 하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허당기 있는 모습을 대중에게 숨겨야 했기에 아나운서 생활을 할 때는 항상 긴장하며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슬퍼도 너무 슬프면 안 됐고, 기뻐도 너무 기쁘면 안 되는 적정선을 유지하는 훈련을 본의 아니게 했던 것이다. 얼마나 고된 삶이었을까.

김경란이 안고 있는 고민은 '틀'이었다. 그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힘들게 쌓은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잘 지키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 거냐며 이젠 좀 자유롭게 살라고 다그쳤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퇴사, 이혼 등 나름대로 틀을 깨며 살아왔던 김경란은 사람들의 조언에 답답함을 느꼈다.

"틀은 남이 만들어준 틀이 있고, 내가 고수하는 틀이 있어요." (오은영)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틀이 있기 마련이다. 오은영은 휴가가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자신의 틀을 소개했다. 김경란은 아침을 항상 챙겨먹는데, 과음을 해도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는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본 적은 있냐는 질문에는 1년 내에 처음 해봤다고 대답했다. 김경란에게 침대는 잘잘 때만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심지어 소파에 누워본 적도 없다고 했다.

질문은 '인간관계'로 이어졌다. 오은영은 김경란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봤는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므로 매우 예리한 질문이었다. 김경란의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편이었다. 안전한 대상과의 관계를 선호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경란은 억울했던 경험들을 하나둘 언급하기 시작했다.

노출이 없는 의상을 입고 패션 화보를 찍었을 때, 한 선배가 "요즘 애들은 저렇게 해서라도 뜨고 싶어 해?"라고 비난했던 일은 김경란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또, 잘 넘어지는 편이라 다리에 멍이 많은데, 그의 다리에 난 상처에 대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선정적인 댓글들이 달려 상처가 됐던 일도 떠올렸다. 성격이 더러워서 결혼을 못 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단다.

수많은 오해들이 김경란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피하게 됐고, 인간관계에 있어 악순환이 반복됐다. 오은영은 그런 오해들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물었다. 김경란은 '내가 그렇게 보이나보다.'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솔직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면 오해들이 언젠가는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순수한 걸까, 순진한 걸까.

"사람을 잘 파악하려면 세상을 알아야 돼요. '저렇게 해서라도 뜨고 싶은가 보지?' 그러면 '아, 내가 부러우니까 저렇게 하지.' 이런 개념들이 생긴단 말이에요. 한 개인을 이해하려고 하면 되게 어려워요. 왜냐하면 개인마다 다 다른 사람이잖아요. 한 개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려면 세상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흐름을 이해해야 되고,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요. 그냥 쉽게 표현하면 (김경란을) 순진하다고 보는 거죠." (오은영)


오해는 생각이고 기분이 나쁜 건 감정인데, 김경란의 경우에는 생각과 감정을 분리해 본 경험이 현저히 부족해 보였다. 오은영의 분석은 정확했다. 김경란은 그런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감내하는 편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 활달했던 성격도 점점 변해 갔고,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 줄 것이라 여기며 살게 됐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은영은 왕따는 가해자가 100% 잘못한 것인데, 김경란은 그런 전제에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지 못했다. 그것이 김경란의 방어 기제였다.

김경란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대부분의 이유를 본인의 실책으로 돌렸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라고 한다. 불안을 지적(知的)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오은영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마음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김경란의 주지화 경향은 아나운서가 되기 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을 거라고 짐작했다. 결국 부모님과의 관계가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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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란은 부모님이 엄격하셨다고 회상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만, 자신은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털어놓았다. 투정을 부리지도,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 김경란의 부모님은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일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귀가를 하면 전화로 하루 일과를 육하원칙에 따라 보고해야 했다. 그래야만 하루가 마무리 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하는 안전이라는 단어에 갇힌 채 사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엄마는 '네가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냐'며 심지어 방송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김경란은 그때서야 가족과 분리된 삶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서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립 선언은 37살에 이뤄졌다. 전쟁과도 같은 진통이 있었다.


김경란은 좀더 빨리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면 시행착오를 빠르게 끝냈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말씨름을 하느라 소모된 시간이 너무 길었다. 부모님의 과잉 걱정 때문에 김경란은 자신만의 삶을 위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삶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부족한 경험 때문에 인간관계가 불편해지다 보면 가능한 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됐던 것이다.

김경란은 "제가 좋아하는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남자가 더 여자를 좋아해야 해. 너 좋다는 남자를 만나야 해"라는 아빠의 말이 인이 박힌데다, 어린 시절 따돌림의 경험까지 겪으면서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면 가산점을 많이 주게 됐다. 그러다보니 수동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이혼을 한 후에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 걸까. 내가 사랑이란 걸 해봤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김경란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정서적 교류, 감정적 이해를 나누는 것이었다.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물었다. 자기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타인의 입을 통해 확인해야만 했다. 혼란스러워하는 김경란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했다.

"원래 틀린 마음이란 없는 겁니다. 그냥 마음은 마음이에요. 마음을 맞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은영)


'틀린 마음은 없다'는 오은영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줬다. 마음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따라서 타인에게 확인할 필요도 없다. 오은영은 오은영은 김경란에게 본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은영은 김경란이 본래 조심하고 사는 사람이기에 감정을 표현해도 된다고 응원했다. 그가 화가 난다면 화가 나는 게 맞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은영은 살아가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확신이 들지 않을 때면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속얘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면서 김경란을 위한 '은영 매직'을 제시했다. 그건 '뻘짓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였다. 아무리 실수하고 뻘짓을 해도 김경란은 언제나 김경란 그 자체라는 응원에 그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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