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예절학교? 교육 강화? 甲이 선택한 신의 한 수, 이을제을(以乙制乙)

너의길을가라 2013. 5. 18. 06:12
반응형




"성원이 예(禮)를 생활화 할 것과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과감히 척결하고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남양유업 대표이사는 왜 울었을까?


앞선 두 글을 통해 '남양유업'을 다루었지만, 한번 더 '남양유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남양유업'이 찾은 돌파구는 '예절학교'였다. 물론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가겠다고도 말했지만,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은 고작 '예절학교의 설립'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에겐 그것이야말로 절묘한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자. 

'예절학교'를 통해 직원들의 예절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발상, 그래서 더 이상 욕설 직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 물론 좋은 생각이다. 기업 내에서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남양유업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욕설을 한 영업사원'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이긴 했지만, '남양유업' 사태의 핵심은 '영업사원의 인품과 예의없음'이 아니지 않은가? 밀어내기를 비롯한 불공정 행위와 비윤리적 경영이 '남양유업 사태'의 본질이 아닌가!

'예절학교'를 설립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을 접한 남양유업 내의 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1. "와.. 회사에서 나한테 예절 교육을 해준다니 정말 땡큐! 열심히 예절을 배워서 상냥하고 예의바른 직원이 돼야지~!"

2. "아, 짜증나..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예절 교육이야.. 괜히 사건을 크게 만들어서 우리만 힘들게 생겼네."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뻔하다. 당연히 99%의 직원들은 '2번'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결국 화살은 '사건을 크게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한 또 다른 乙인 영업사원, 남양유업의 비윤리적 경영을 폭로한 수많은 제보자들, SNS와 인터넷을 통해 남양유업을 비판한 시민들에게 불만이 향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이 '남양유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대형마트를 예로 들어볼까? 우리가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고 생각해보자. 손님은 많고, 당연히 줄은 길게 늘어서 있다. 슬슬 짜증이 난다. 우리는 퉁명스러워지고, 별일 아닌 일로 계산원과 트러블이 발생하게 된다. 괜시리 계산원이 불친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고객센터로 향해서 불만을 접수하기도 한다. 대형마트에서는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직원들을 상대로 고객 대상 서비스 교육을 강화할 것이다. 목소리톤은 어떻게 해야 한다, 말투는 어때야 한다, 미소는 어떻게 지어야 한다, 무조건 고객이 왕이다.. 이런 자잘한 교육들이 이어질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대형마트 계산대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이유, 계산원이 괜시리 불친절한 것 같아 보이는 이유.. 그것이 '예절'의 문제일까? 그것이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필자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계산원을 더 교용(투입)해서 줄을 분산시키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물건들만 계산하고 대형마트를 떠나지만, 계산원들은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밀려드는 고객들의 수많은 물건들을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도 계산대는 몇 군데밖에 열려있지 않고, 손님들은 끊임없이 몰려든다. 팔과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형마트'뿐만의 문제이겠는가? '백화점'도 마찬가지고, 그 외의 대부분의 서비스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한국일보>에서 발췌 -




甲이 선택한 것은 이을제을(以乙制乙)?


불만이 접수된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서비스 교육을 강화하는 기업들의 사고방식과 대처.. 정말 절묘한 신의 한 수가 아닌가? '저 손님은 왜 저래?' 결국 직원들은 손님들이 미워지게 된다. '저 직원은 왜 저 모양이야?' 손님들도 직원들이 마뜩잖다. 乙과 乙이 싸우는 상황.. 甲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즐거운(?)'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지금껏 甲은 乙들을 영리하게 잘 다뤄왔다. 비정규직을 상대하기 위해 '정규직'을 내세웠고, 때로는 '어용 노조'를 만들어 서로를 싸움 붙였다. 乙을 잡기 위해 또 다른 乙을 사용하는 방법.. 그들은 이것을 이을제을(以乙制乙)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정말 씁쓸하지 않은가? 

대기업의 회장들을 비롯한 임직원들, 그러니까 甲들의 생각은 단순하고도 천박하기 짝이 없다. 직원들의 노동의 강도,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갖가지 문제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그들에게 '직원'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기계'에 지나지 않고, '소모품'에 불과하다. 짜르면 그만이고, 자리가 비면 또 다른 '소모품'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쌓이고 쌓여있으니까. 

당연히 기업은 고용을 늘려 줄을 분산시키는 방법, 다시 말해서 직원들의 노동의 강도를 덜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서비스가 강화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압박이 줄어들면 오히려 일의 능률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네가 살려면 쟤를 죽여야지'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부추긴다. 그들은 일터가 즐거우면 자연스럽게 노동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터가 즐거우면 회사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겐 애초부터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기계처럼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족하니까.. 


예절학교, 직원들에 대한 서비스 교육 강화는 눈속임이자, 
乙과 乙을 이간질하는 교묘한 신의 한 수!


예절학교를 설립하고, 직원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乙과 乙의 싸움을 부추기는 甲의 교묘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직원들은 '분란'을 두려워한다.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두렵고, 회사 내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예절 학교'나 '서비스 교육 강화' 같은 것은 더더욱 싫다. 피곤하고 귀찮다. 甲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乙이 乙의 도움을 뿌리치게 만드는 것! "됐어. 도와주지 않아도 돼. 그게 더 나를 힘들게 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대체휴일제가 논의되자, 대기업에서 들고나온 카드는 일용직 노동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과거 대형마트가 의무휴일제에 맞서는 카드로 들고나온 것은 소비자 불편과 고용 감소, 임대매장 입점주들의 피해, 대형마트와 거래를 하는 농가(農家)들의 손해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남양유업의 김웅 대표이사는 "이번 사태로 회사 매출이 30% 이상 줄어 (남양유업에 상품을 제공하는) 낙농가의 재고가 쌓이고 있다"면서 '낙농가'를 걱정하고 나섰다. 

乙을 상대하기 위해 또 다른 乙들을 인질로 삼고 버티는 甲의 악질적인 태도.. 매번 반복되는 이을제을(以乙制乙)의 술책! 우리는 또 다시 물러설 것인가? '아, 기업이 변화하려고 노력을 하는구나' 라며 또 다시 속아 넘어갈 것인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