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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관대한, 더 관대해진 성범죄 판결, 법은 누구의 곁에 있는가?

너의길을가라 2014. 12. 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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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 5개월 VS 3~5년

[2] 2012년 46.4개월 → 2013년 42.8개월 2014년 33.1개월


이 두 가지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1]은 미국 성범죄자 평균 형량과 대한민국의 성폭행범 평균 형량을 비교한 것이다. [2]는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는 실형을 받은 성범죄 사건(가해자가 성인인 경우)의 형량을 나열한 것이다.


ⓒ 한국경제


영남대 산학협력팀이 '양형기준제의 현황 및 개선 방안' 용역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는 2012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유죄 판결이 난 성범죄 중에서 가해자가 성인인 사건 1,700건의 형량을 집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법원이 내린 1,700건의 판결 중에서 무려 52.4%(890건)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것이다. 실형 비율은 47.6%(810건)에 그쳤다. 실형률은 2012년 56.4%에서 2013년 47.7%으로 줄었고, 2014년에는 33.5%에 불과했다. 


줄어든 것은 실형률만이 아니다. 형량도 턱없이 줄었다. 위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실형을 받은 사건의 형량은 2012년 46.4개월에서 2014년 33.1개월로 현격히 감소했다. 성범지자들이 실형을 받는 경우도 줄고, 형량까지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말은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일까? 성폭력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2011년 1만 8,499건 2012년 1만 9,386건 → 2013년 2만 5,591건)에서 이런 '관대한 판결'은 우리 사회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일각에서는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안의 적발이 많아졌기 때문에 형량이 단축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실형률도 낮아지고 있는 마당에 형량을 논하는 건 우스운 노릇이다. 게다가 그 이전에도 대한민국의 성범죄 사건 형량은 충분히 낮았다. 성범죄에 대해 '관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창피나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회의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경찰에 신고하는 현실에서 가해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를 허탈하게 만든다. 집행유예의 남발과 형편없이 낮은 형량은 피해자를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 넣는다. 자연스럽게 신고를 기피하고, 고립의 길을 걷게 된다. 법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그렇게 싹트는 것이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한 장면


성범죄 사건을 대하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필리핀에서는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이륜택시 운전사)에게 1만 4,400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강간죄의 형기(40년)에 강간 횟수(360년)을 곱해 형량을 산출한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이 1만 4,400년의 형기를 채울 수는 없다. 이처럼 상징적인 형기는 성범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대만에서도 이와 같은 상징적 판결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강간과 납치 등을 저지른 미국 오클라호마의 대런 베널포드는 2,2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만 검찰은 12명의 여자 아이를 1,013번 성추행했던 학원 강사 왕 씨에게 징역 4,613년을 구형했다. 물론 대만의 유기형 최장기간은 30년이기 때문에 실제 판결에서는 형량이 대폭 줄었지만, 성범죄에 대한 단호한 의지만큼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박향헌 미국 로스앤젤레스 검사는 "미국에는 삼진아웃법이 도입돼 성범죄를 3번 이상 저지르면 25년 이상에서 종신형까지 선고되는데, 아동 성범죄는 납치나 상해를 한 경우라면 초범이라도 25년에서 종신형까지 선고된다"면서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직접 물질적ㆍ정신적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민사소송뿐 아니라 가해자가 형을 받게 되면 피해보상은 법에서 정해줘 가해자와 피해자가 별도로 합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영화 <소원>에서 다뤘던 조두순 사건만 하더라도, 징역 12년이 선고됐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사건'을 제출받고 분석했는데, 경악스럽게도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3명 중 2명은 집행유예를 받거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는 '합의'가 큰 영향을 미쳤고, 가해자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범죄 자체를 예방하기 위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시 성범죄에 대한 법정 하한을 상향하고 이를 판결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5월 실시됐던 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10명 중 9명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무작정 중형을 선고하라는 것은 아니다. 기소율과 양형 기준을 높여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현실화'하라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곁에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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