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여성 캐릭터의 누아르를 개척한 <차이나타운>, 아쉽게도 분위기만 남았다

너의길을가라 2015. 5. 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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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2>의 독보적인 흥행 돌풍(5월 3일 기준 7,011,348명) 속에서 지난 주 개봉한 <차이나타운>은 박스오피스 2위를 고수하며 3일까지 62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어벤져스2>가 스크린을 독점하면서 선택권을 잃은 성인 관객들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인 <차이나차운>으로 몰려들고 있는 대진운을 누리고 있다고 보는 쪽이 정확할 것 같다. 



<차이나타운>은 그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 비해 완성도 면에서 상당히 아쉽다. 김혜수와 김고은이라는 두 여배우의 만남은 그 자체로 강렬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이야기 자체는 흔하디 흔한, 평이한 것이지만 기존의 누아르 영화(혹은 조폭 영화)들이 남성 캐릭터 위주로 극을 이끌었던 것과 달리 <차이나타운>은 여성 버전이라는 점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은> '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영화?' 혹은 '<달콤한 인생>과 <황해>의 여성 버전?' 정도에 그쳤다. 다른 영화들에서 봤던 장면들이 조각조각 섞여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이 부족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소 야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태어나자마자 지하철 보관함(코인로커)에 버려진 아이, (보관함) 10호에 버려졌다 해서 그 아이의 이름은 일영(김고은)이 되었다. 차이나타운의 사채업자 '엄마(김혜수)'에게 팔려간 일영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쓴다. 살아남기 위해서. 하지만 파국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채무자의 빚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은 일영은 그의 아들 석현(박보검)의 '친절함'에 이끌린다.


일영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눈치 챈 엄마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시험을 제시하고, 그때부터 영화는 빠져나갈 수 없는 흐름 속으로 급속히 말려들어간다. 표정 변화조차 없이, 감정을 철저히 봉인한 채 그저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던 일영이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전개는 납득하기 어렵다. 여성성을 자각하는 장면으로 치마를 입는 것을 선택한 것도 상투적이다.



일영이 석현에게 빠져다는 장면은 마치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가 희수(신민아)에게 흔들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물론 설득력은 훨씬 떨어진다. 필자가 여성이 사랑이 빠지는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영의 변화는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설명이 빈약하다. "모르겠어요. 그냥 친절해서"라고 얼버무리기엔 너무도 큰 파국이 아닐까?


"플래시백(과거 회상)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상업영화 틀 안에서 전사나 사족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우리 영화 속 인물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국적은 알 수 없지만, 웬지 중국인일 것 같아'. '우곤과 엄마 사이는 진짜 모자 관계일까?', '쏭의 이름은 왜 쏭일까' 관객들이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곱씹어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한준희 감독)


<차이나타운>에는 치도(고경표), 쏭(이수경), 홍주(조현철) 등 엄마의 또 다른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법한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에 대한 서사는 그야말로 텅 비어있다. 불친절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많은 부분들이 생략됐다. 한준희 감독은 '우리 영화 속 인물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며 영화 속 불친절을 해명한다. 실제로 간결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오프닝을 보면 감독의 도드라지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끔찍할땐 웃어 그게 덜 끔찍하니까"


<차이나타운>은 김혜수의 표정과 눈빛 등 압도적인 연기와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가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다. 강력한 생존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김고은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쉬움이 더욱 짙게 남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이처럼 훌륭한 요소들을 잔뜩 모아놓고서 '분위기' 말고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 <차이나타운>에 대한 원망이랄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생존 그리고 성장하는 두 여자 이야기"라는 한 감독의 말과는 달리 엄마가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권력을 승계하는 역할에 머물고만 것을 두고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결국 '엄마'가 된 김고은은 '엄마' 김혜수, 김혜수의 엄마였을 그 누군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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