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카타르시스를 잃은 <군도>, 철저한 오락 영화도 되지 못 했다

너의길을가라 2014. 7. 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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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43% 2009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상한 그녀> (864만 명)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박을 터뜨린 가운데 <역린> (390만 명)과 <표적> (280만 명)은 겨우 체면치레를 하는 데 그쳤다. 지난 5월에 개봉한 <끝까지 간다>는 342만 명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줬고 , 하반기 한국영화의 포문을 열었던 <신의 한 수>는 누적 관객 수 333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겨울왕국>, <캡틴 어메리카 : 윈터솔져>,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엣지 오브 투모로우>,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으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한국영화의 기가 완전히 눌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영화의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돌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상반기에 개봉했던 한국영화의 작품성이 기대에 못 미쳤고, 다양성을 잃은 채 천편일률적인 '조폭 영화'를 생산하는 데 그쳤던 자체적인 문제가 훨씬 더 결정적이었다.


한껏 움츠러들었던 한국영화가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라인업부터 튼실하다. 하정우, 강동원이 출연한 <군도 : 민란의 시대> (이하 <군도>),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쏟아낸 <명량>,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라고 할 수 있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맡고 김윤석과 박유천이 주연을 맡은 <해무> 등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영화들의 면면은 화려하고 알차기까지 하다.



"평범한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가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전복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윤종빈 감독)


한국영화의 부활 혹은 한국영화의 대반격의 선봉은 23일 개봉한 <군도>가 맡았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다시 만났고, 강동원 · 이성민 · 조진웅 · 마동석 등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을 설레게 하는 배우들이 총출동 했다. <군도>는 오로지 감독과 배우만으로도 '대박'이 예고된 초특급 기대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의적(義賊)'이라고 하는 매력적인 소재를 취한 만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한 시대에 힘없는 백성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우는 의적을 그린다는 시놉시스도 훌륭했다. 관객들의 입장에서 속이 뻥 뚫릴 정도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단지, 기대감만 놓고 봤을 때 <군도>는 다음 주에 개봉할 <명량> 그 이상이었다.



<군도>는 개봉일인 지난 23일 하루동안 무려 55만 107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에 해당한다. 높은 기대치에 걸맞은 훌륭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승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개봉하는 <명량>이라는 경쟁작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군도>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도>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영화'를 기대했지만, <군도>는 경쾌하지만 어정쩡한 오락 영화로 전락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군도>가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수호지'의 미덕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호지'류(類)의 이야기 구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억압된 민초들이 품고 있던 '카타르시스'를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수령인 송강을 중심으로 한 108명의 유협(遊俠)들의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군도>에도 '수호지'(보다 수는 적지만) 못지 않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도치(하정우 분)를 비롯해서 군도의 리더인 노사장 대호(이성민 분), 땡추(이경영), 전략가 태기(조진웅), 괴력을 지닌 천보(마동석), 태기와 천보의 사랑을 받는 명궁 마향(윤지혜) 등은 하나같이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군도>는 이들을 활용해 극을 풍성하게 만들기보다는 '들러리' 정도로 소비하고 만다.



"선인과 악인의 구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인물 각각의 주제와 사연을 그리되 하이라이트에 이르러서는 선악의 대결이 아닌 자기 안의 번뇌와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윤종빈 감독)


윤종빈 감독은 <군도>를 도치와 조윤(강동원)의 대립 구도로 그려내고자 했다. 또, 단순한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이유 있는 악역'을 등장시켜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니 무게 중심이 조윤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져 버렸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영화가 지향했던 '전복(顚覆)의 드라마'는 사라져버렸다. 민란(民亂)과 그 주체들은 이유 있는 악연인 조윤의 아픔을 장식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그 결과 <군도>는 그저 그런 오락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지점은 영화 <역린>과 비교해볼 만하다. <역린>은 감독이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을 감추지 못하고, 각자의 스토리를 모두 살리는 바람에 장황하고 지루한 영화가 됐다. 애석한 것은 <역린>의 캐릭터들은 그다지 매력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군도>는 특색있는 캐릭터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군도> 역시 다른 의미에서 지루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윤종빈 감독이 이 영화를 철저하게 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나 역시 거기에 일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뜨악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군도'에 대해 기대했던 부분과 실제 영화와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하정우)


하정우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고 뜨악'할 수도 있다며, '기대했던 것과 실제 영화와의 간극'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란'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묵직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철저한 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윤종빈 감독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은 셈이다. (혹은 마케팅 팀에게 당했거나?) 또, 의적들의 생동감 넘치는 액션 활극을 기대했던 관객들도 조윤에게 과도하게 맞춰진 포커스 탓에 60~70점 정도밖에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연출적인 부분에 있어서 '내레이션'의 계속된 등장은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히 갈리는 부분이다.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 감독의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 전달에 한계를 느낀 감독의 고육지책 정도로 여겨진다. 극의 도입부에서의 내레이션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화의 중간 중간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영화에 대한 몰입과 집중을 깨고 만다. 심지어 배우의 감정선까지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여겨졌다. <군도>는 <친절한 금자씨>가 아니라고!



- 이 멤버 가운데 '조윤(강동원)'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왜 조윤은 홍길동이 되지 못했을까? -


역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까? <군도>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만약 조윤을 전면에 배치하기보다 오히려 '군도의 캐릭터'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윤종빈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더욱 '철저한 오락 영화'가 되진 않았을까?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지금 이 시대,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하고 민중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이 시대에 분명하고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카타르시스를 포기하면서 메시지도 잃었고, 애매한 구도를 유지하려던 탓에 재미도 잃어버린 <군도>는 '대작'을 꿈꾼 지루한 '범작'에 그치고 말았다. 어째서 <군도>는 이 시대의 민중과의 교감의 끈을 놓아 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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