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애국기동단에서 서북청년단까지, 반복되는 극우의 망령

너의길을가라 2014. 10. 7.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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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은 해방 직후 상황과 비슷하다. 일본이 항복한 직후 소위 해방정국은 좌익들이 주도했다. 그대로 당하기만 했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못했거나, 공산국가로 탄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이철승 학생 주도로, 거리에는 김두환이 나서서 공산당에 대해서는 물리력 동원해서 막아 낸 것이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살인까지 났다. 이렇게 좌익을 척결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건국할 수 있었다." - 민병돈 국민운동본부 고문(전 육군 사관학교 교장) -



2009년 3월 25일 극우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전역 군인 등 30대~60대의 무술 유단자 97명으로 구성된 '애국기동단(대)'을 발족시켰다. 발대식에서 격려사를 한 민병돈 고문은 "좌익들은 말로 하면 안 된다. … 몸으로 부딪쳐서 막아내야 한다. 좌익들은 물리력이나 폭력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자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압해야 한다"면서 과격한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애국기동대 출범은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시작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면서 "반 헌법적 좌익폭도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우리의 조국, 직장, 가족들을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좌익세력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압하겠다는 애국기동단은 자위력을 행사, 다시 말해서 무력 행사를 천명했다.


이 들은 부대 체계를 갖추고, 가스총 등의 무기로 무장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테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애국'으로 가득찬 극우단체가 공권력을 부정하고, 스스로 폭력을 통해 사형(私刑)을 행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무정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애국'을 참칭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들을 아나키스트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애국기동단이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은 발대식이 있고 약 3달 정도 후였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덕수궁 대한문 앞 도로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6월 24일 새벽, 애국기동단 회원 20명과 고엽제전우회 회원 30명 천막 8개와 집기 등을 부수고 영정을 강탈했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 상주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행동에 대해 그 어떤 제지도 가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다.


시민상주단은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을 상대로 "노 전 대통령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영정을 강탈한 것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12월 1일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부장판사 손지호)는 "서씨는 백씨에게 80만원을 배상하라" 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하나의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애국기동단이 어떤 단체인지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이들과 빼닮은 하나의 단체를 연상할 수 있다. 바로 해방 이후 좌익을 테러하던 '서북청년단'를 빼닮았다. 


늦은 가을이 되면서 경찰관 외에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이 폭도를 토벌하면서 주민을 괴롭혔고 또 혼자 있는 부녀자들에게 '남편이 어디 갔느냐', '데려오라'고 하는 와중에서 폭행을 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양일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 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그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71~272쪽-



1946 년 11월 30일 소위 '서청'이라고 불리는 '서북청년회(이후 서북청년단으로 더 많이 불림)'가 발족했다. '백색테러(주로 극우 내지 우파의 정치적 목적 달성의 위해 암살, 파괴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테러)'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서북청년회의 구성원은 북한에서 시작된 사회 개혁의 여파로 식민지 시대에 쌓아왔던 정치적 · 경제적 기득권을 잃어버린 세력인데,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극우반공단체를 결성한 것이다.


2009년 12월 11일 열린 서북청년단 실체 규명' 토론회에서 정종식 씨는 '서북청년단의 결성과 활동'이라는 논문을 통해 "월남한 청년들은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없어서 주로 동향민을 중심으로 청년단체들을 앞세워 자구책을 강구하게 됐다. 이들은 북한의 체제개혁에 의해 피해를 입고 내려온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므로 남한에 연고를 둔 청년단체들보다 반공투쟁에 더욱 극렬하게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 들은 '공산주의자'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이 가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테러했다. 제주 4 · 3 사건 진행과정에서 서북청년단은 사실상 준국가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서청대원들은 군경의 신분으로 최일선에 나서서 토벌전을 수행'한 것이다. 1947년 하반기에는 경찰보조기능이 부여되면서 백색테러는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서 북청년단은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명분 아래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우익계통의 사람도 폭력의 희생양이 됐고, 아무런 관련도 없던 민간인들도 극심히 피해를 입었다. 서북청년단은 금품을 갈취하는 파렴치한 일부터 처녀를 강제로 아내로 삼는 비인간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양동윤 4 · 3 도민연대 대표는 "4·3이 비극적인 성격을 갖게 된데에는 서북청년단이 제주에서 보여준 야만성에 원인이 있다"면서 서북청년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북청년단을 쏙 빼닮은 애국기동단이 활개를 치더니 급기야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지난 9월 28일 서울광장에 나타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란 이름의 단체는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면서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이다. 이런 정신을 계승해서 서북청년단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국우세력의 단발성 해프닝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미 서북청년단을 연상시키는 극우단체가 여럿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살펴봤던 애국기동단일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폭력과 테러 등 '하는 짓'은 똑같지 않은가?


물론 이들이 '범보수진영'의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서북청년단'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점잖고 상식적인 다수의 보수들이 스스로를 '깡패'로 내모는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가져온 까닭은 무엇일까? 이나미 방송통신대 책임연구원은 "민족주의나 우파를 내건 단체는 해방정국에서 여럿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서북청년단을 택해 재건하자고 했을까. 결국 선명성 경쟁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결국 보수 정권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난 2008년 12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자. 당시 황우여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 건국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부 수립기에 활동했던 우익단체 회원들을 '건국 유공자'로 지정하고, '독립 유공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 조직원 4000여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MB정부에서부터 시작된 극우단체에 대한 극진한 대우와 지원은 박근혜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임수경 의원은 안행부가 2014년도 비영리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사업을 통해 보수우익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운영하는 '애국기동단'에 4000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냈다. 애국기동단이 어떤 단체인가?!


애 국기동단을 비롯해서 서북청년회 재건위원회 등 극우단체는 사실상 '백색테러'를 표방하고 있다. 법치국가를 부르짖는 보수 정권이 이들을 묵과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법처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뒤에서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선진국? 국격? 극우단체의 창궐과 준동을 묵인하면서 어찌 선진국을 바라보고 국격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악몽 같은 이름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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