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악(惡)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악의 연대기>를 펼쳐보라

너의길을가라 2015. 5. 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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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손현주가 돌아왔다. 2013년 개봉했던 <숨바꼭질>로 560만 관객을 동원하며 명실공히 흥행 배우로 이름을 올린 그가 이번에도 스릴러 영화인 <악의 연대기>로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악의 연대기>는 <매드 맥스 4 - 분노의 도로>와 <어벤져스 2>를 누르며 흥행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연기로는 이미 검증을 넘어 찬사(讚辭)를 받는 손현주가 내면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만큼 손현주의 연기를 감상하기를 원했던 관객들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연대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끝까지 간다>와 닮아 있다. 우선, 제작자(장원석 대표)가 같고, 주인공의 직업(경찰)이 같다. 우발적 살인(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에 이은 뒤처리라는 이야기의 틀도 비슷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끝까지 간다>가 동(動)적이라면, <악의 연대기>는 정(靜)적이다. 또, 전자가 코믹스러움이 담겨 있는 철저한 상업영화로 제작됐다면, 후자는 진지하고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악의 연대기>가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끝까지 간다>의 미덕이 집중과 속도였던 것에 비해, <악의 연대기>는 집중을 선택하기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인위적인 속도 조절로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을 잃어버렸다. 최 반장(손현주)이 우발적으로 살해한 시체가 그가 근무하는 강남경찰서 앞 공사장의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채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두뇌 싸움은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높이지만, 이후의 전개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다소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 지점이 바로 '악(惡)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짜릿한 범죄 영화에서 진지한 사회적 영화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손현주 활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객들이 손현주에게 기대하는 것은 액션이나 두뇌 싸움이라기보다는 '남다른' 내면연기였을 테니까. <숨바꼭질>에서 보여줬던 손현주의 깊고 다양한 내면연기, 가령 불안하고 초조한 낯빛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핏발 등으로 표현해내는 눈빛 연기는 <악의 연대기>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악의 연대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과연 죄를 저질렀으면 악인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어요. 과거 열정적이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월과 생활에 찌들어 타락한 모습조차도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잘못이죠. 이 작품은 아마 그런 것에서 출발하지 않나 싶어요. '이 정도면 어때'라는 것이 '때'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최 반장의 잘못이죠. 편한 동료들한테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최 반장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때문에 촬영 내내 힘들었죠. 촬영이 끝나고 난 다음 문득 여기에는 '내 모습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지금 깨끗한가'라는 의문점을 던져주는 게 백운학 감독의 '악의 연대기'죠." (손현주)


앞서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악의 연대기>는 관객들에게 '악(惡)이란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손현주가 연기한 최 반장은 정당히 부패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가 묻은 경찰관이다. 형사로서의 능력도 뛰어날 뿐 아니라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훌륭한 경찰관이기도 하지만, 뒷돈을 받아 챙기고, 인맥을 활용한 처세를 통해 승진을 하는 등 탐욕에 가까운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전형적인 악인이라기엔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과연 그는 악인일까?


'세월과 생활에 찌들어 타락'한 자신의 '때'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최 반장은 '우발적 살인'으로부터 시작된 '과거'와의 대면을 통해 고독한 내면 갈등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 전개이지만,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특히 관객들의 뒤통수를 칠 만한 '반전'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영화는 초반의 장점을 모두 상실하고 만다.





"오히려 반전에 대한 생각을 일부러 안했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의식적으로 멀리 했었죠. 요즘 관객들 수준이 높아서 거짓말 하는 걸 금방 알아요. 현재 최창식 반장의 모습만 봤었죠. 이제까지 다른 작품들에서는 분위기가 무거워도 동료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사실을 감추고 은폐하다보니까 더 큰 일이 벌어지고, 그걸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게 힘들었어요." (손현주)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더 이상 깊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악의 연대기> 속의 반전'들'은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한 수준이다. 초반부터 지나칠 만큼 '티'를 팍팍 내기 때문에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물론 거기에는 '비장의 무기'라고 할 만한 몇 가지 반전들이 더 숨겨져 있지만, '동성애'를 비롯한 다소 과한 설정들은 오히려 쓴웃음을 남긴다.




최 반장 손현주를 필두로 그의 오른팔인 오 형사 역할을 맡은 마동석, 강력반 막대 차동재를 연기한 박서준 그리고 중반부터 등장하는 최다니엘은 연기적인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에 대한 강박과 허술한 전개, 웃음기가 완전히 배제된 점 등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악의 연대기>는 괜찮은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손현주의 말처럼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게 된다면 약 100분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악(惡)이란 그리 거창하지도, 그리 멀리 있지도 않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악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대해지는 순간 혹은 삶에 찌드는 순간 부지불식 간에 스며들어버리는 '세월의 때'와 같은 것 아닐까? 당신의 악의 연대기를 돌아보라. 실로 엄청난 이야기가 적혀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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