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신동엽의 둥글둥글 조언, 중재만 하는 '안녕하세요'가 불편하다

너의길을가라 2019. 4. 30. 16:27
반응형


이번 주 월요일도 (어김없이) 답답하게 시작됐다. '월요병'의 급습이야 이제 익숙한 일이다. 그만큼 주기적으로 습격해 오는 스트레스가 또 있다. 바로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이다. 고민을 들어준다고 큰소리치며 속이야기를 털어놓으라 하지만, 정작 고민은 해결될 기미조차 없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민은 허공을 맴돌다가 다시 발화자에게로 돌아간다. 그저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연을 풀어나가는 MC들의 태도(와 제작진의 입장)는 매번 어정쩡하다. 양쪽에 발을 걸치고, 어설픈 중재를 하려든다. 어떻게든 화해를 모색한다. 방송, 그것도 예능의 한계를 모르지 않지만, 중재와 화해로 결론지어선 안 될 사연들이 그리 마무리되면 시청자의 입장에선 허탈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가정의 파탄'을 막으려 애썼던 과거 가부장적 국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파탄일까. 무엇을 위한 '가정의 유지'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희생자가 필요한 일이다.


전자담배 수증기로 집안을 가득 채워 가족들이 제대로 숨도 못 쉬게 만드는 남편. 가족들은 불편을 넘어 건강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얼굴에 대놓고 뿜는 건 아니니까..", "밖에 나가기가 좀 귀찮다라고요."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스스로 '가장(家長)'으로 대우받고 하는 사람이 가족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일신의 얄팍한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그 누가 그를 가장으로 따를까. 



이건 단순히 가장으로서의 책임 문제가 아니다. 가정(家庭)은 여러 구성원들의 집합체이고, 그 구성원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누군가가 원치 않는 일이 있다면 가급적 피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기본적인 예의도 없었을 뿐더러 상대방(아내와 아이)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이런 경우, 대개 문제는 여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문제점은 단순히 '전자담배'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계속 털어놓았다. 남편은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였다. 남편은 아내가 워킹맘이었던 시절에 자신이 집안일을 도와줬었는데, 이제 아내가 전업주부가 됐으니 집안인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업주부라고 해서 모든 집안일을 떠안아야 하는 걸까. 남편에겐 집안일이 가족 구성원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결여돼 있었다. 하긴, 밥을 하는 게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하지 못하겠다는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대리 효도' 요구도 압박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시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하라고 강요했다. "네가 며느리니까 네가 해야"한다는 것이다. 건물 1층에 시조부가 함께 거주하고, 시댁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불과해 일주일에 5~6번이나 들른다고 하는데, 안부 전화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연락도 없이 불쑥 집으로 찾아와 '청소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시어머니가 반가울 리 있을까? 또, 자신이 제사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남편은 술을 마시고 논다고 하니 화가 나지 않을 리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것 때문에 갈등이 많데요. 남편은 자기 조상인데 밖에 나가 있고, 왜 남의 조상에게 드리는 음식을 내가 해야 하지라고 반발심이 생기는 경우가 있죠. 이 모든 게 남편이 중간자적 역할을 잘 하면 둥글둥글하게 넘어가겠지만, 그런 역할은 하지 않은 채 당연한 너의 의무라고 얘기하면 요즘엔 반발을 하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동엽은 남편의 중간자적 역할을 강조했다. 일견 타당하게 들리지만, '남편= 중간자'라는 인식은 '옛날 사람'의 것이다. 남편은 중간자가 아니라 언제나 당사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중립을 지키거나 중재를 도모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신동엽의 조언처럼 '둥글둥글하게 넘어가'는 건 결코 선(善)이 아니다. 그런 태도가 지금의 불합리를 유지시켜 온 것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MC들은 아내가 화가 나서 욕을 좀 했다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엄청나게 큰 잘못을 했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남편이 잘못을 했지만, 아내도 욕을 했으니 둘다 똑같다는 논리를 펼쳤다. 제작진도 자막으로 '잘잘못을 가리기 힘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이 중립적 태도는 옳은 것일까? 사연을 통해 아내가 남편에게 상스러운 욕을 했던 이유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욕을 했다'는 사실만 놓고 잘못했다고 하는 건 억지 아닐까?


많은 시청자들이 <안녕하세요>를 두고 스트레스 유발 프로그램이라 지적한다. 심각한 가정 내의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다룬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안녕하세요>가 취한 태도는 중재, 화해, 타협이었다. 그리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 식의 고민 상담이 그 목적을 진정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의 제작진은 그 뻔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어째서 <안녕하세요>는 '말리는 시누이'가 되려 하는 걸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