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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이 못마땅했던 시어머니, 며느리 시즈카는 죄인이 돼야 했다

너의길을가라 2018. 11. 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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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환-시즈카 부부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추진된 이벤트였다. 갓난아이를 돌봐야 하는 시즈카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디 대한민국의 시댁이 며느리의 고단함까지 세세히 챙기는 경우가 있었던가. 아니나 다를까. 3시간의 긴 이동시간으로 낯선 환경 때문에 울음을 터뜨린 아이는 쉽사리 그칠 기색이 없었고, 시즈카는 아이를 달래느라 고군분투해야 했다.  


정신 없었던 여행의 첫째 날이 어찌어찌 마무리 되고,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는 상황, 가족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앉았다. 이번에는 별 탈 없이 넘어가나 했더니, 갑자기 시어머니의 눈이 번뜩인다.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먹고 있는 손녀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더니 "나는 있잖아. 이렇게 시리얼 먹는 게 왜 이렇게 달갑지가 않지?"라고 운을 띄운다. 


"아침을 매일 이렇게 먹어? 시리얼 같은 걸로?" 

"간단하게 먹을 때는 이렇게 먹고, 너무 배고픈 날은 밥 해 먹고.."


식탁 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마치 꾸중하듯 매섭게 물어보는 시어머니의 위세에 시즈카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시즈카는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번에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누이가 거들고 나섰다. "사실은 저번에 한 번 창환이네 집에서 잤는데, 아침에 시리얼 먹더라고. 순간적으로 나는 창환이는 밥을 먹여야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그걸 이르다니, 참으로 얄밉다.



그 불편한 상황에서 손윗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시누이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화들짝 놀란 시어머니는 "아니, 사람이 일하러 나가는데 아침에 따뜻한 밥을 해서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시즈카를 압박한다. 다행히 고창환이 시즈카를 변호하고 나서 일단락 됐지만, 그 상황과 분위기가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도대체 시즈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걸 틀렸다고 말하지만,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였어."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석호(조진웅)가 아내 예진(김지수)에게 건네는 대사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다른 가치(세계)관, 나와 다른 생각(과 관점), 나와 다른 생활 패턴을 존중하지 않고, 그것은 틀렸으니까 고치라고 강요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산산조각나는 건 시간문제다.


사람들은 왜 자꾸만 상대방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려 드는 걸까. 어째서 다른 걸 두고 틀렸다고 열을 올리는 걸까.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보면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저들도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고,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일에는 저토록 무감각해질 수 있단 말인가. 


아침에 든든하게 쌀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에게 시리얼은 못마땅한 음식일 수 있다. 그러나 아침부터 쌀밥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시리얼은 충분히 훌륭한 음식이기도 하다. 그건 완벽히 개인 취향의 문제이고, 선택 가능한 삶의 영역의 한 부분일 뿐이다. 옳고 그름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그저 다른 것뿐이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자신의 방식을 시즈카에게 자꾸만 강요한다.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부분은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계속해서 '먹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먹'어'야 한다가 아니라 먹'여'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들에게 고창환은 아직까지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에게 남자(편)는 스스로의 의지로 밥을 차려 먹는 존재가 아니라 여자들이 따뜻한 밥을 지어 놓으면 그제서야 숟가락을 뜨는 존재인 것이다. 


비록 시즈카가 전업주부라고 하나, '아내는 남편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주입시키고,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부족한 아내라고 여기는 태도는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애시당초 아침에 시리얼을 먹기로 한 건 고창환의 선택이자 결정이었다. 여성 철학자 이현재는 이 부분을 적절히 지적함으로써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아침 식사로는 뭐가 좋으냐,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요. 누가 그 결정을 하느냐? 독립된 개체로서 독립된 개체가 결정하는 것에 따라줘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들이 시리얼을 좋다고 한 그 결정, 그 부분을 어머니가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강요하지 않는 것,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족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소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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