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백종원의 골목식당' 톺아보기

습관적 빌런 만들기와 정인선의 애매한 역할, '골목식당'이 자초한 위기

너의길을가라 2019. 5. 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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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 안 하는 건 난 용납을 못 해요. 알고 안 하면 정말 죄예요. 거짓말 하는 사람, 나는 정말 안 봐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은 공분(公憤)을 이끌어낸다. 사람들을 분개하도록 만들고, 그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삼아 시청률과 화제성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취한다. 참으로 영악한 장사꾼이다. 분노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적확한 대상에게, 정당한 사유로, 적정한 크기로 분노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분노의 대상이 개인(個人), 그것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약자라면 어떨까. 


여수 꿈뜨락몰에서 꼬치집의 등장으로 <골목식당>은 또 한번 뒤집어졌다. 시청자들은 '왜 저런 게으르고 한심한 자영업자까지 도와줘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꼬치집 사장님은 포방터시장의 홍탁집 아들, 청파동의 피자집 사장님에 이어 '역대 최악'의 계보를 잇고 있다. 물론 총체적으로 불량했던 위생 상태에 대해 변명할 여지는 없다. 게다가 백종원의 추궁에 (당황했기 때문인지) 거짓말도 조금 섞어 변명을 했던 모양이다. 


'빌미'를 잡은 <골목식당>은 꼬치집을 난도질했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난 뒤, 꼬치집 사장님은 요식업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개념없는 사장이 됐다. 또, 나태하고 의욕도 없는 무능한 청년으로 기억됐다. 절대로 (백종원이) 도움을 줘서는 안 되는 한심한 인간이 된 것이다. 어떤 '스토리'를 입히고,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목식당>의 제작진은 너무 가혹했다. 


이처럼 '역대 최악'을 제시하고, 그 대상이 '개과천선'으로 향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낡은 스토리텔링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시청자들이 지겨움을 토로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건 차라리 사소하다. 개인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부정적 에너지가 그들의 삶에 크나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는 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악플들에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제작진은 출연자들을 '욕받이'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고, 그들을 방송에 쉽사리 내보낼 수 있다. 그 이유는 출연자들이 승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출연자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게 뻔한데 어째서 승낙을 했을까. 제작진에게 통편집을 요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욕구덩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을까. 답은 간단하다. 방송을 타면(그것도 <골목식당>이라면) 손님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좀더 명확하게 말해볼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매우 씁쓸하다. 제작진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출연자들의 '최악'을 마음껏 들춰낸다. 게다가 조미료를 쳐서 감칠맛을 더한다. 방송을 알아버린 백종원의 날선 말을 통해 정당성까지 획득한다. 출연자들은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 (뒤늦게 제작진을 성토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방송의 수혜를 입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백종원을 믿기 때문이다. 


서산 해미읍성 편에서도 쪽갈비김치찌개집 사장님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의 분노를 몰아주지 않았던가. 설령 식당 운영과 관련해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격'을 침범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빌런(villain)을 만들어 전시해 놓고 시청자의 분노를 끄집어내, 이를 자양분으로 삼는 구조에 대해 <골목식당> 제작진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자극적인 예고편에도 시청률은 요지부동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인선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불가피하다. 조보아의 활약이 워낙 컸던 탓에 후임으로 합류한 정인선의 부담이 큰 건 사실이다. 적응 기간은 필수다. 다만, 역할이 애매하다는 점이 문제다. 제작진은 '아재 입맛', '청소 요정'을 통해 정인선의 캐릭터를 만들려 했지만, 최근에는 정인선의 롤을 '리액션'에 한정짓고 있다. 꼬치집을 방문한 백종원이 분노를 터뜨릴 때마다 카메라는 정인선의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담아냈다. 정인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놀란 표정을 세트로 보여줬다. 


조보아는 '소통'이라는 뚜렷한 역할을 갖고 있었다. 백종원의 등장에 깜짝 놀란 사장님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그들의 마음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이 낯선 사장님들의 기댈 구석이었고, <골목식당>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윤활유와도 같았다. 또,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로 짧은 연습만으로도 웬만한 출연자들을 능가하는 실력까지 보여줬다. 신포시장 편의 타코야키, 청파동 편의 꽈배기 등 사장님들과의 대결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직까지 정인선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골목식당>의 균형도 깨어진 게 아닌가 싶다. 뜬금없는 인터뷰로 '염정아'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대목은 의아하기만 했고, 로제 파스타를 골라 백종원과 함께 시식을 하는 장면은 제작진의 속이 뻔히 보였다. 상황실에서 사장님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사람이 필요한 시점에 김성주가 시식을 하게 될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정인선을 '리액션'으로만 활용하려는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는 앞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백종원은 꼬치집 사장님에게 알면서도 안 하는 건 용납할 수 없고, 거짓말은 절대 받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백종원이 매번 강조했던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백종원의 섬뜩한 경고는 매번 제작진을 비껴가고, 백종원의 명쾌한 솔루션에 제작진은 매번 내로남불이다. 섭외부터 편집, 프로그램의 방향성까지 <골목식당>의 총체적 재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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