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소방관들을 위한 기도,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너의길을가라 2016. 8. 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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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당신이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어딘가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때로는 날카롭고, 어떤 때는 다급하다. 그 소리의 번짐이 처절하고, 또는 단호하다. 사이렌 소리는 각종 위험의 최전선에 서 있다. 또, 모든 종류의 요구의 최전선에 서 있다. 가지 않는 곳이 없고,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 소리는 외면하지 않는다. 신고(요청)가 있다면 출동한다. 그 원칙은 절대불변이다.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도심을 뒤흔드는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고,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김훈, 『라면을 끓이며』, p.205 -


소방관들의 평균 수명은 59.8세다.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하면 13년이나 짧다. 최전선의 고달픔은 숫자로 쉽게 변환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이나 된다. 참고로 순직한 소방관의 수는 33명이다. 자살의 가장 많은 이유는 우울증 등 신변비관(19명, 54%)이었다. 최전선으로부터 전해진 숫자가 무겁다.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김습성 고려대 교수, 2015)'에 따르면, 소방관 7,625명 중 549명(7.2%)가 진지하게 자살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최전선'의 고통을 매만지고, 비명을 들어야 하는 소방관들을 위한 심리상담(및 치료)이 절실해 보인다. 과연 정부 차원의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걸까? 지난 12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안전처로부터 제공받은 '2014년 전국 소방공무원 심리평가 설문조사' 내용을 공개했는데, 구조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유병률(有病率)은 6.3%였다. 이는 일반인(0.6%)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소방관의 수(3만6912명 중 1만4452명)는 점차 늘어가고 있고, 실제로 치료를 받고 있는 소방관의 수도 6,050명으로 2012년(363명)에 비해 16.7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심리상담치료예산은 3억 7,100만 원에 불과한데, 2012년(5,300만 원)에 비해 7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1인당 심리치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외롭고 두려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소방관들의 마음을 지켜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다. 


"가만히 있어도 속옷까지 다 젖습니다. 양말까지 다 젖고 나면 너무 더워서 손발이 저려요. 장비를 메고 뛰어가다가 난간으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노원소방서 김종훈 구조대장), <SBS>, 소방관의 '지옥불' 사투, "이것만 있어도.."


여전히 '소방관'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장비 노후', '처우 개선'과 같은 것들이다. 국민안전처는 소방장비 노후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3년간 소방안전교부세 7,628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소방관들이 '소방잡갑'을 개인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 뒤늦게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각종 장비 교체에 열을 올리는 촌극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 소방 개인장비 노후율 0%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현장의 소방관들의 목소리는 어떨지 궁금하다. 



3교대 근무를 비롯한 열악한 근무 환경, 소방 공무원의 국가직화 등 여전히 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손쉽게 풀어낼 수 없는 일이라면, 소방관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건 다툴 필요가 없는 문제일 뿐 아니라 그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여기에는 '시민 의식'의 성장도 요구된다. 그러나 여전히 뉴스에는 출동한 119 대원을 폭행하고, 행패를 부렸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최근 법원에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며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어디 수월하겠는가. 남겨진 고통과 상처는 결국 그 119 대원의 몫일 것이다. "이게 반복되게 끊이지 않고 계속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저희를 더 지치게 하고...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한 소방관의 푸념이 너무도 아프게 읽힌다. 어쩌면 정부의 지원 부족과 열악한 처우 개선만큼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건,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부디 그 소리가 더 이상 '비명'처럼 들리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김훈의 기도를, 다시 한번 따라 읊어본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그리고 감히 한마디 덧대본다. "또, 아프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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