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선거 끝나면 고소·고발 취하? 그들만의 아량이 선거문화를 죽인다

너의길을가라 2014. 7. 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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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네 선거판의 흔한 광경(光景)인데, 선거철만 되면 선거법 위반을 사유로 고소와 고발이 잇따른다. 이쯤되면 선거 기간이니지 고소 · 고발 기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지난 1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6 · 4 지방선거 선거법위반행위 고발내역 및 수사의뢰 현황'를 제출받아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6 · 4 지방선거 기간 동안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된 건수는 무려 397건, 수사의뢰 건수는 105건에 이른다고 한다. 



유형 별로 따져보면, 우선 기부행위가 150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허위사실공표가 76건, 인쇄물 관련이 57건, 공무원 등의 선거개입이 24건이었고, 그 외에도  부재자 관련(10건), 비방 · 흑색선전(8건), 유사기관·사조직(5건), 집회·모임이용(4건) 등이 있었다. 물론 이런 고소와 고발이 모두 형사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중에는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한 개연성이 매우 높은 사건도 있을 테지만, '흠집내기'의 일환 즉 '네거티브'를 하기 위한 '묻지마 고소(고발)'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정당들은 겉으로는 '정책 선거'를 하자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네거티브'를 선거의 첫 번째 전략으로 활용하곤 한다. 가령, A 후보가 B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고발) 하면 언론은 이를 자연스레 받아쓰게 되는데, 문제는 이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때는 마치 그 B 후보가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한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고소 · 고발'이 제법 쏠쏠한 선거 전략의 하나라는 것은 선거가 끝난 후의 풍경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거 기간동안 실제로 멱살만 잡지 않았다뿐이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사람들이 선거만 끝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거 기간 중 고소 · 고발 → 선거 후 취하'는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지난 6월 2일,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 한 인터넷 매체가 박 시장의 아내 강난희 씨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박 시장 측은 해당 매체와 기자, 정몽준 후보 측 이수희 대변인, 이혜훈 새누리당 전 최고위원 등 4명을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했다'선거 기간 중 고소 · 고발 → 선거 후 취하'라는 공식은 이 케이스에도 적용이 됐다. 지난 6월 2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내나 가족들이 먼저 용서해야 된다고 얘기하고 있어 그 쪽으로 정리해야하지 않나 싶다"면서 정몽준 전 의원측 인사들을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한 것을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박원순 = 대인배'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박 시장이 고발을 취하한 다음 날 정몽준 전 의원도 '대인배' 대열에 합류했다. 정 의원 측도 선거기간 중 발생했던 고소 · 고발 사건을 취하하겠다고 밝히면서 "선거 기간 중 학교 급식 문제 등으로 학부모 단체 등이 박 시장을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했지만 박 시장 측에 대한 고소 고발을 최대한 자제했다. 박 시장은 선거기간 중 제기되었던 문제들에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보완해 서울시 발전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파이낸셜 뉴스>에서 발췌 - 


이러한 '미담(?)'이 서울시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일, 새정치민주연합 충북도당은 새누리당 윤직식 전 충북지사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고발을 취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 전 후보는 선거를 일주일 정도 앞둔 5월 27일에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고, 이 내용을 선거구민 37만 명에게 문자 메시지로 알린 혐의로 고발 조치됐었다. 고발을 취하한 이유에 대해서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측의 고소·고발과 흑색선전으로 얼룩졌던 선거전을 일단락 짓고 통합과 상생의 충북 발전을 열기 위해 고발 취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상당히 바람직한 모습인 것 같다. 싸움을 멈추고, 서로 화합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라니! 얼마나 따뜻하고 감동스러운가? 그런데 정말 '선거 기간 중 고소 · 고발 → 선거 후 취하'라는 공식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앞서 선거 기간 중의 고발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했을 개연성이 매우 큰 경우와 상대편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묻지마 고소'를 하는 경우 말이다. 


어느 경우에든지 간에 '선거 후 취하'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것에 '통합과 화합' 혹은 '포용과 화해'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갖다붙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했다면, 이는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분명히 선거법을 어겼음에도 '고소(고발)'이 취하됨으로써 법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사실상 선거법이라는 것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 아닐까? 혹 다음 선거에서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지금과 같은 선거법 위반 행위가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이유가 '선거 후 취하'라는 공식 때문은 아닐까? 


이는 두 번째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선거 전략상 '네거티브'를 위해 상대 후보에 대해 마구잡이식 고소(고발)를 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사실관계를 끝까지 밝혀내서 허위사실이라면 '무고죄'를 적용시켜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선거판에서 이런 식의 내거티브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승자의 아량'을 베푸는 것도 좋지만, 명확하게 선거법을 위반한 내용들을 묵과하고 지나가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선거판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깝게는 7 · 30 재보궐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고, 그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에서 맞붙었던 후보들 간에는 서로 친분관계가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시종 충북지사와 윤진식 전 후보는 청주고 동기동창으로 50년지기 친구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얽히고설혀 있기 때문에 고소(고발)를 끝까지 밀고가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 친분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부분이다. 그보다는 선거문화를 바꾸는 것, 선거판을 정화시키는 것이 훨씬 더 중차대한 일이다.



한편, 부산시장 선거에서 서병수 시장에게 패한 무소속 오거돈 전 후보는 "다시는 잘못된 선거문화가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 저는 시장이 되지 못했지만 거짓과 위선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았음을 증명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면서 고소 · 고발을 취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선거 기간동안 오거돈 후보에 대해 '논문표절 문제, 세월호 애도기간 골프운동, 종북관련 발언' 등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오 후보 측은 서병수 후보 본인을 포함해서 모두 10여 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또는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 고발한 상황이다.


오 후보 캠프의 전세표 언론특보단장은 "서 후보 측에서 제기한 여러 의혹 가운데 다른 것은 몰라도 골프 건과 종북좌파로 몰아세우기에 대해선 후보 자신이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끝까지 사법부 판단을 받을 방침"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필자는 오거돈 전 후보의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선거 기간동안 저지른 선거법 위반을 축구나 농구 경기 중에 용인되는 '파울'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거법 위반에 대한 고소 · 고발을 취하하는 '그들끼리의 아량'을 베푸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잘못한 행위에 대해선 그에 맞는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뭐, 어차피 선거가 끝나고 나면 취하할 건데'라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는 한 진흙탕 싸움과 같은 선거 문화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 


진선미 의원은 '6 · 4 지방선거 선거법위반행위 고발내역 및 수사의뢰 현황'을 알리면서 "정치권 스스로가 공명선거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정책 위주의 선거문화를 지향해 공정한 선거문화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바른 말이지만, 정치권 '스스로' 공명선거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리가 없다. 그런 것을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강제적으로라도 '책임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선거법 관련 고소 · 고발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절대 취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면 간단히 해결된다. 


진흙탕 선거, 혼탁한 선거 문화를 만든 것도 그리고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것도 결국은 정당과 정치인들이다. '책임 정치'는 정책에만 적용되고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한 고소 · 고발에도 '책임'을 다하라. 선거법 위반 행위로 유권자를 농락한 저급한 정치인들에 대해 '아량'을 베푸는 것은 스스로 공범임을 자처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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