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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박사들과 함께 돌아온 '알쓸범잡2'의 아쉬운 한 가지

너의길을가라 2022. 1. 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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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을 끝내고 '또 범죄가 있겠어?'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범죄가 세상에 존재하더라고요. 여러분께 알려드려야 할 것들이 이렇게 너무 많습니다." (윤종신)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이 돌아왔다. 분노조절장애,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 아동 학대(인천 계부 목검 사건), 동물 학대(고양이 살해범), 상품 백화점 붕괴, 보복운전, 점점 더 진화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와 보이스피싱 그리고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까지.. 그토록 많은 범죄와 범죄자들을 다뤘는데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을까? 그런 의문일랑 접어두는 게 좋겠다.

지난 9일 방영된 tvN <알쓸범잡2>는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범죄가 많다는 것을 입증했다. 제작진은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새로운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범죄 박사), 사회부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취재 박사), 피해자 인권 전문 변호사 서혜진(법 박사)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기존 멤버인 가수 윤종산과 물리학 교수 김상욱이 합류했다.

<알쓸범잡2>가 선택한 첫 여행지는 강원도 동해였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을 되짚었다. 그는 "방화는 증거 인멸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제하며, 특히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등 연쇄살인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방화 범죄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범죄자들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예방 연구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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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가는 '문송면 군 수은 중독 사건(1988)', 제주 음료 공장 협착 사고(2017), 요트 밑 따개비 따던 학생의 익사 사고(2021) 등을 언급하며 청소년 산업재해 문제를 환기시켰다. 서혜진 변호사는 '현장실습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라고 규정하며 개탄했고, 김상욱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장강명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의와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상욱 박사는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던졌다. 스티븐 핑거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문명이 진보할수록 폭력성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출연자들은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김상욱은 "인간 본성이 선하다면 그것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제도가 움직여야 하고, 폭력적이라면 가능한 더 많은 제재와 법률이 이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알쓸범잡2>의 유일한 여성 출연자인 서혜진 변호사는 강릉 커피거리를 다녀온 후 텀블러와 관련된 연기적인 사건을 언급했다. 바로 40대 공무원 남성이 직장 여성 후배의 텀블러에 자신의 정액을 총 6차례에 걸쳐 넣어둔 충격적인 범행이었다. 동기는 이상 성욕, 성적 쾌감이었다. 흔히 '정액 테러'라 불리는 이러한 사건은 전국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스토킹하는 동료의 커피에 체액을 넣거나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체액을 묻히는 사건도 있었다. 또, 7개월 동안 지하철역에서 자신의 체액으로 여성을 테러한 30대 남성이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지난 3년간 경찰에 접수된 정액 테러 사건은 총 44건인데, 피해자가 잘 몰라서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는 더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처벌됐을까.

"성폭력 범죄도 시대에 맞게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법이 먼저 앞서 갈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되게 열심히 뒤따라가줘야 하는 거거든요." (서혜진 변호사)



당연히 '성범죄'라고 생각되지만, 그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타인의 재물 등의 호용을 해했다고 하여) '재물손괴죄'였다. 성폭력 처벌법 안에 정액 테러에 대한 규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도덕적인 행위라도 법률에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처벌할 수 없었다. 윤종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성범죄에 대한 규정의 범위가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혜진은 성폭력 같은 범죄는 형법을 제정할 당시(1953년)와 개념과 행위 등이 많이 달라졌다며 현실 반영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령, 불법 촬영 범죄의 경우 신촌 백화점 사건(1997년)을 계기로 입법이 됐다. 당시에는 불법 촬영에 관한 법령이 없어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다. 서혜진은 현재 정액테러 사건도 강제추행으로 처벌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 중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알쓸범잡>는 강력 범죄부터 사기까지 다양한 범죄들을 다뤘다. 넓은 관점을 통해 시청자들의 지평을 넓혀줬다. <알쓸신잡2> 역시 시즌1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또, 새로운 출연자들이 가세하면서 더욱 다채로워졌다. 시청률은 2.358%(닐슨코리아 기준)로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시즌1 1회는 2.634%였다.)


이처럼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출연진의 구성이다. 그들의 경력과 역량은 전문가로서 부족함이 없다. 다만, 구성이 조금 아쉽다. 바로 성비(性比) 때문이다. <알쓸범잡2>는 전체 출연자 5명 중 4명이 남성이다. MC 역할을 하는 윤종신을 제외하더라도 4명 중 3명이 남성이다. 이는 시즌1과 동일하고, 범위를 <알쓸신잡>으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제작진 입장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분야에 남성이 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알쓸범잡>에는 반드시 범죄 관련 분야 종사자만 출연하지 않는다. 당장 두 시즌째 출연하고 있는 김상욱 교수만 해도 물리학 교수가 아닌가. 또,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한 장강명은 (범죄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하나) 소설가이다. 항변은 소득이 없다.

조금만 고민했다면, 조금만 섭외에 공을 들였다면 충분히 좀더 다양한 출연진을 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알쓸범잡> 제작진의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게을렀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는 <알쓸범잡2>의 홍보 문구가 이래저래 뼈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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