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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언급한 김상욱의 경고, 그리고 광주 붕괴 사고..

너의길을가라 2021. 6. 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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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강남 중심에 세워졌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뉴스로 접한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가 발생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강남 부유층을 겨냥한 초호화 명품 백화점 삼풍은 도대체 왜 무너졌던 걸까.

지난 13일 방송된 tvN <알쓸범잡>의 김상욱 교수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먼저 삼풍백화점이 지어졌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풍 백화점은 1989년 11월 완공됐고, 같은 해 12월 1일 개장했다. 80년대의 강남은 규정과 법을 무시하고 오로지 돈을 좇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삼풍은 '됐고, 닥치는 대로 개발하자'는 시대상의 산물이었다.

그 당시(80년대)에 강남은 닥치는 대로 개발하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규정과 법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문화의 결과물일 수 있는데.. (김상욱 교수)


당시 삼풍 백화점의 면적과 입지는 어느 정도였을까. 지상 5층, 지하 4층에 연면적 2만2386평(매장 면적 9387평)로 단일 매장 규모로는 전국 2위에 해당됐다. 내부에는 총 556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었고, 직영 종업원 700여 명과 입주업체 판촉사원 300여 명 등 약 1000명 가량 근무했다. 매출액을 살펴보면 1994년에 1646억 원으로 전국 백화점 순위 7위에 올라있었다.


김상욱 교수는 삼풍백화점이 지어지는 과정을 '총체적 난국'이라 표현했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건축(한층을 보 없이 기둥으로만 지지하는 건축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둥이 많고 두꺼워야 한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비용 절감을 위해 기둥 가수와 폭을 줄여버렸다. 그러다보니 기둥이 판을 뚫으면서 연쇄적으로 모든 층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삼풍백화점은 공사뿐만 아니라 허가, 준공 검사 등 전과정이 온통 불법투성이였다. 원래 삼풍백화점이 있던 땅은 아파트 부지였는데, 백화점을 지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업부지로 용도 변경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갔다. 애초에 지상 4층, 지하 4층 건물을 허가받았음에도 삼풍백화점 측은 제멋대로 한 층을 더 올려버리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한 무분별한 욕망은 이미 제어불능이었다. 공사 완료 후 준공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이마저도 불법으로 무마했다. 백화점 개설 승인에 걸린 시간은 단 3시간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심지어 현장에도 나가보지 않은 채 스무 개가 넘는 검사항목이 이상 없다고 서류를 꾸몄다. 그 대가로 1천만 원 상당이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더 있었다. 삼풍 백화점은 5층에 식당가를 만들었다. 식당가는 보통의 층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무게다. 냉장 및 조리 기구들은 그 무게가 상당한데, 3개 층을 얹은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정리하면 애시당초 4층을 버티게 설계를 해놓고 7층을 올린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옥상에는 에어컨 때문에 냉각탑까지 얹었다. 냉각탑은 물이 다 채워지면 무려 80톤에 육박한다.

설마 이런 건물이 무너지겠어?


당시 삼풍백화점 옥상의 무게는 설계된 안전 하중의 4배였으니, 금방 무너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혹시 사고를 미연에 감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많은 전조 현상이 있었다. 붕괴 2달 전인 4월에 식당가 천장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5월에는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졌다. 바닥에 내려앉기도 했다. 사고 발생 5일 전에는 5층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고, 3일 전에는 가스 누출 사고도 발생했다.

붕괴 전날에는 펀칭 현상이 나타났다. 무량찬을 지탱하는 기둥 주위가 깨지더니 기둥 위쪽이 뚫리기 시작했다. 6월 29일 당일 오전에도 식당가엔 물이 새기 시작했고, 바닥은 이미 완전히 기울어버렸다. 영업 불가의 상태였다. 이런 보고를 받은 경영진의 조치는 놀랍게도 가림막을 치는 것이었다. 또,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영업이 끝나고 보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거듭해서 위험 상황을 보고받은 경영진은 뭔가 조치를 취했다. 사람을 대피시켰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먼저 보석을 옮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어야 했던 게 아닐까.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삼풍백화점은 1분도 안 돼 폭삭 내려앉았다. 5시 55분, 호화롭던 건물은 사라져버렸다. 결국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린 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안전불감증이었다.


우리는 왜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삼풍 백화점이 붕괴하기 8개월 전, 한국 사회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붕괴 사고를 경험했다. 바로 성수대교 사건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 갑자기 다리 48m가 끊어져 32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안타깝게도 통행량이 많은 출근 시간이었다. 사망자들 중에는 학교를 가기 위해 이동하던 여고생 9명도 포함돼 있었다.

시공사는 돈 때문에 불량 용접을 했고, 시는 문제의 징조를 무시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10시간 전, 서울시 도로국 산하 건설 사업소는 무너진 곳 50m 부근에 상판 이음새의 이상을 발견했다. 하지만 비가 온다는 이유로 일부 보수만 하고 철수했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1차적인 원인은 부실 공사였지만, 부실감리, 안전 검사 미흡 등 부정부패가 점철된 사건이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 큰 재해가 일어나기 전, 반드시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법칙


김상욱 교수는 하인리히 법칙을 언급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흔히 1:29:300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큰 재해로 1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그 이전에 같은 문제로 경상자가 29명 발생하고, 역시 같은 문제로 다칠 뻔한 사람은 300명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다시 말해서 전조가 있다는 뜻이다. 거대한 재해는 한 번에 갑자기 벌어지지도, 우연히 일어나지도 않는 법이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는 수많은 잘못들이 모여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물론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잠깐의 과실 혹은 작은 실수들일 수 있지만, 어떤 실수들은 모이면 수백 명의 사람을 희생시키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는 규정을 어기는 것에 관대했던(과거형으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정과 변칙이 능력으로 평가받던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결과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반성했을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지역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54번 시내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건물 뒤편 외벽을 먼저 철거하면서 건물의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린 탓이다. 2019년 서울 잠원동 붕괴 사고와 유사하다.

현재 광주 붕괴사고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한국 사회의 민낯이 속속 그 참담함을 드러내고 있다. 불법 재하도급 관행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위법적 철거 행태가 밝혀졌고, 행정당국의 관리 및 감독 부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고질적인 문제, 안전불감증이 또 다시 대형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전조는 없었을까. 한 시민이 4월 7일 철거 공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국민신문고에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민원을 제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광주 동구청 담당자는 시행사 측에 안전조치 명령 공문을 보냈지만, 실제 이행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광주 동구 건축과와 민원과 등 압수수색하며 각종 위법 사항 및 관리감독 부실 등에 대한 규명에 나섰다.


윤종신과 함께 삼풍희생자위령탑에 다녀온 김상욱 교수는 찾아가기 힘들었다며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가 어두운 면을 자꾸 숨기려 하고,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잊는다면 언제든 이런 사건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촬영은 광주 붕괴 사고 전에 진행됐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는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수많은 잘못과 실수, 부정과 변칙들이 모여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불감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김상욱 교수의 말마따나 소를 한 마리 잃으면, 그때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끔찍한 재해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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