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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의 고민거리가 된 이소라를 위한 변론

너의길을가라 2017. 8. 2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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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Busking) :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모든 공연이 버스킹에 속하지만, 주로 음악가들의 거리 공연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다음백과)


JTBC <비긴 어게인>은 따뜻한 프로그램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비긴어게인>, 애초에 이소라와 버스킹은 어울리지 않았다'의 시작 문장을 빌려와 고쳤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음악' 때문이다. 수치로 정확히 계량할 수는 없지만, 존 레논(John Lennon)의 'imagine'이 세계 평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노래를 흥얼거려 본 사람들은 안다. 그만큼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만들고, 평온함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한다. 그건 음악을 하는 사람과 그 음악을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마법이다.


처음에는 '평가'가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당시 제작진의 속내도 그랬을지도.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세 명의 뮤지션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니까. 단순히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음악적 가치도 뚜렷했기에, 세 뮤지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노래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으리라.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평가'가 궁금했다 그것만이 유의미 했다. 

 

 

그러기 위해선 '외국'으로 나가야 했고, 형식은 '버스킹'이 적당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리고 계속해서 모아 놓는 '힘'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지난 3회, 아일랜드의 항구 도시 골웨이에서 '관객'의 입장에서 버스킹을 지켜보던 노홍철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무대가 끝난 후, 카페에서 노홍철은 "그냥, 내가 아는 형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너무 혼자 있고, 그게 내가 너무 싫어. 너무 불쌍해. 우리나라에서 봤던 형, 누나가 아니고.."라며 눈물의 이유를 밝힌다.


이것이 <비긴 어게인>이 끄집어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평가'일 것이다. 노홍철이 느꼈던 개별적 '감정'에 대해 존중하면서도 다수의 시청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던 까닭은 애당초 '음악'에 그와 같은 '평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 얼마나 모이느냐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뮤지션은 그 순간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들 앞에서 귀를 기울여 노래를 듣는 사람들과 교감했다. 분명 TV를 지켜보던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소통이었다. '버스킹의 묘미'는 이미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현재 JTBC <비긴 어게인>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이소라'일 것이다. 분명 그는 예민하고 민감하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컨디션에 따라 음악적 완성도의 진폭도 큰 편이다. 수준급 세션들과 호흡을 맞추는 완벽한 환경에서 노래를 해왔기 때문에 '길거리'라는 환경이 낯설고 어색하다. 이소라의 그런 모습들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급기야 '애초에 이소라와 버스킹은 어울리지 않았다.'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일정 부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애초에 이소라와 버스킹은 어울리지 않았다'는 단정(斷定) 속에는 '버스킹'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 각자마다 '버스킹'에 대한 이미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버스킹'의 전부일 수는 없다. '애초에' 버스킹에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공연'이 그 주체이고 대상이다. <비긴 어게인>의 출연자 중에서 윤도현이 가장 버스킹에 익숙한 멤버일 수는 있겠지만, 그가 가장 버스킹에 어울리는 멤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윤도현의 락이 분위기를 휘어잡는 매력이 있다면, 이소라의 재즈 풍의 음색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비긴 어게인> 제작진이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수를 섭외한 까닭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가수만을 섭외하거나 애초에 밴드를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상이한 두 가수가 만들어 낼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획일적인 음악이 아닌 다양성이 있는 음악을 통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여전히 여러 종류의 '낯섦'이 잔존해 있지만, 그런 '긴장감'조차 없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해 왔던, 각기 다른 성향의 뮤지션들이 '함께' 음악을 하는데 그 정도의 '충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저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갈등과 어려움을 순조롭게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 변화는 회가 거듭할수록 뚜렷하게 느껴진다. 유희열은 키보드의 위치를 바꿔 윤도현과 이소라의 얼굴을 보며 연주를 하고, 이소라도 한층 더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킹'에 녹아들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된 9회만 보더라도 저들이 얼마나 '버스킹'이라는 무대를 즐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표정에서부터 여유와 편안함이 넘치지 않던가. 일요일의 늦은 밤, 그들의 음악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감'이라는 게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회차가 진행되어도 관객을 외면하고 노래를 부른다' 한 칼럼니스트의 지적은 '교감'에 대한 모독처럼 들린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비긴 어게인>의 무대를 즐기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분명 훨씬 더 많은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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