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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친구와 동침?'부부의 세계'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당신에게

너의길을가라 2020. 4. 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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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고 바람 피울 줄 몰라서 안 피우는 게 아냐. 다만,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며 사는 게 맞다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제하는 거지. 제혁 씨도 이제 이런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절박한 순간에도 선우(김희애)는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삶을 구성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선우는 휩쓸리지 않았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 언덕에 홀로 서 있었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고독의 슬픔이 똬리를 틀고 온몸을 휘감아 왔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선우는 주저하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않았다.

선우도 태오(박해준)처럼 배우자를 철저히 속일 수 있었다. 마치 불륜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기만할 수 있었다. 또, 태오처럼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잠자리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우는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제혁(김영민)의 유혹에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그건 홧김에 저지른 (어리석은) 맞바람도 아니었고, 제혁이라는 (같잖은) 남자에게 매혹당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바람은 왜 피우는 거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어.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 그걸 들키는 남자, 본능을 못 이기거든."

제혁이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 나간 선우는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심리에 대해 물었다. 제혁은 태연하게 세상에는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 그걸 들키는 남자, 두 종류의 남자만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남자의) 본능'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행위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는 의미였다. 선우는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선우는 호텔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혁과 하룻밤을 보낸 선우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예림(박선영)에게 이 사실을 밝히겠다며 제혁을 으르기 시작했다. 선우의 조건은 태오의 회사 법인자금 내역 및 개인 계좌 현황을 조사해서 넘기라는 것이었다. 모든 재산을 자신의 법인으로 옮겨놓은 태오를 응징하기 위해선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제혁의 협조가 필요했다. 선우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복수의 서막이 올랐다.


JTBC <부부의 세계>는 파격적이다. 선우가 제혁을 협박하기 위해 잠자리를 갖는다는 설정(과 묘사)은 매우 과감하다. 선우는 주도적일 뿐더러 관계에 있어 우위를 잃지 않는다. 혹자는 선우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선우 역시 태오와 똑같은 것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선우가 (알량한) 도덕적 우위를 잃었다는 것일까. 양비론이 고개를 든다. 그러면서 <부부의 세계>를 '막장 드라마'라고 손가락질한다.

과연 <부부의 세계>는 막장 드라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물론 <부부의 세계>는 막장드라마의 요소(불륜과 그로 인한 임신 등)를 갖고 있다. 불륜에서 복수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도 새로울 게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그건 <부부의 세계>가 '불륜' 그 자체보다 그 이면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질 끌지 않고 초반에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그 남잘 만든 건 나예요. 재력, 배경, 하다못해 성격까지. 이혼으로 지난 세월 동안 쏟아부은 내 정성을 허공에 날리긴 싫어요."
"지나온 세월로 남은 시간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

<부부의 세계>는 불륜의 과정을 나열하는 진부한 막장 드라마의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부부라는 관계의 이면을 들춰내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부부의 세계>에는 여러 부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혁과 예림은 쇼윈도 부부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부라는 관계와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가령, 최 회장 아내(서이숙)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덮는다. 물론 시원하게 따귀를 올려붙이지만 거기에서 멈춘다. 그는 "이혼으로 지난 세월 동안 쏟아부은 내 정성을 허공에 날리긴 싫"다며 불륜을 눈감고 빌딩 한 채를 받는다. 그에게 남자들의 섹스는 '배설'일 뿐이니까. 반면, 선우에게 남편과의 사랑 혹은 신뢰는 부부 생활의 근간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결혼을 유지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부부의 세계>의 미덕은 개연성이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선우의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의 불륜과 친구들의 배신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게다가 아들 준영(전진서)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선우는 결단해야만 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분명했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했으니 말이다.

"내 아들, 내 집, 내 인생, 뭐가 됐든 내 거 중에 그 어떤 것도 절대 손해볼 수 없어요. 이태오, 그 자식만 내 인생에서 깨끗이 도려낼 겁니다"

이야기의 큰 줄기가 '선우는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에 맞춰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급적 가장 짜릿하고 통쾌한 복수가 되길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각각의 인물들의 사정(과 감정)도 흥미롭게 펼쳐질 것이다. <부부의 세계>는 섣불리 인물들의 선악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태오의 내연녀인 다경(한소희)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짚어내고 있는 건 그래서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역시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김희애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몰입도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극중 인물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가 다채롭게 표현되면서 드라마의 수준은 한층 올라갔다. 극본을 쓴 주현 작가와 연출을 맡은 모완일 PD는 <부부의 세계>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 할지라도 웰메이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 13.986%(4회, 닐슨코리아 유로프랫폼 기준)은 결코 막장의 결과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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