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동유럽 여행기] 5. 구시가 광장이 완성한 프라하라는 동화

너의길을가라 2017. 4. 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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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지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점(起點)을 잡는 게 중요하다. 갑자기 낯선 건물과 도로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지면, 아무리 '구글 지도'라는 마스터 키가 있다고 하더라도 길을 찾는 데 제법 시간을 많이 쓰게 된다. 물론 길을 헤매다가 계획에 없었던 곳에 당도하게 되거나 지도나 여행 책자에는 나와있지 않은 (나만의) 장소를 찾는 '재미'가 여행의 묘미라고 하겠지만, 기본적인 지리적 정보는 숙지하고 있어야 '미아(迷兒)'가 되는 혼란을 피할 수 있다.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


프라하에서는 그 중심축이 아무래도 '카를 교(라기보다는 블타바 강이겠지만)'가 될 텐데, 이 아름다운 석조 다리의 한쪽은 프라하 성이 있는 말라스트라로 이어지고, 또 다른 한쪽은 구시가 광장(Staroměstské Náměstí Praha)과 연결돼 있다. 구시가 광장은 프라하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핵심적인 여행 코스이다. 당연히 수많은 여행객들이 운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발 디딜 틈 없는 '밀집도'를 느껴보고 싶다면, 구시가 광장으로 가보자.


매시 정각마다 종소리와 함께 인형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천문시계(Astronomical Clock)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정각이 되면 해골이 오른손으로 줄을 잡아 당겨 모래시계를 (절반 쯤) 뒤집는다. 그러면 두 개의 창문이 열리는데, 12사도가 돌아가며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행렬이 모두 끝난 후에는 닭이 울고, 이윽고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1338년에 건축된 구시청사 남쪽 벽의 천문시계(1410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졌고, 

현재 작동되는 것 가운데는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언젠가 유투브에서 프라하와 관련한 동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 중에 천문시계 앞에 모인 사람들이 이 퍼포먼스를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감탄사를 쏟아내는 영상이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저 곳에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했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억이 무의식 중에 남아 있어서 '프라하'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현장 속에 있고 싶어서 말이다. 


천문시계 퍼포먼스는 프라하에 갔다면 꼭 봐야 할 이벤트(프라하 성 정문의 위병 교대식처럼)라고 할 수 있는데, 최소한 5분 전에는 도착해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 매 시간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언제든지 볼 수 있어 부담은 없다. 아예 천문시계 앞의 카페나 광장 주변에 머물면서 정각이 될 때마다 천문시계로 가보는 것도 좋다. 



틴 성당


천문시계에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제법 널찍한 광장이 펼쳐진다. 모든 공간들이 그러하듯이, 구시가 광장의 낮과 밤도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띤다. 낮은 활기차고, 밤은 로맨틱하다. 비누방울이 광장 곳곳을 수놓고, 익살스러운 인간 동상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어? 여기 동상이 있었나?'라고 착각하게 할 만큼 섬세하다.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유롭고 또 활기차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편, 어둠이 그윽하게 깔리기 시작하면 카를 교에서 시작된(혹은 광장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로맨틱함이 광장으로 스며든다. 밤이 되면 천문시계에 조명이 쏟아지는데, 일출과 일몰 시간, 태양과 달의 위치 심지어 별자리까지 표시된 이 경이로운 천문시계는 더욱 찬란히 빛나기 시작한다. 낮에 거쳐갔던 사람인지 새롭게 프라하에 도착한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얀 후스 동상(Jan Hus Monument , Pomní Jana Husa)


아름답기는 틴 성당(Church of Our Lady Before Týn , Kostel Matky Boží před Týnem)도 마찬가지다. 높이가 80m에 달하는 이 성당은 14세기 중반에 지어졌는데, 나란히 솟은 두 개의 탑(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은 갖고 있다)과 첨탑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프라하의 '나침(compass)' 역할을 한다. 광장의 중앙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마치 구시가 광장의 건문들이 이 동상을 에워싸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인 얀 후스(Jan Hus)다. 


면죄부를 판매해 부를 축적하는 등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던 당시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참다 못한 얀 후스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독일의 마틴 루터나 칼뱅보다 100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얀 후스의 등장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의 부패는 100년 이상 지속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교 개혁을 주장했던 많은 신학자들이 이단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얀 후스 역시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을 당하게 된다. 그를 지지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후스파'를 만들어 끈질기게 개혁을 요구했지만, 그들도 후스와 마찬가지로 처형당하게 된다.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은 1915년에 그가 사망한 지 500년 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시가 광장은 카를 교,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프라하 여행의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유대인 지구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화약탑과 시민회관, 팔라디움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바츨라프 광장까지 연결되는 중심지다. 다시 말해서 프라하 여행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틴 성당을 비롯해서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아르누브 양식 등 서양 건축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낮과 밤의 이질적인 모습은 결국 '로맨틱'으로 연결되는데,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건물과 풍경들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매혹시킨다. 누군가 구시가 광장을 한마디로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프라하라는 동화를 완성시키는 장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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