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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이 두려운 시골개, 강형욱은 묵묵히 기다려줬다

너의길을가라 2021. 12. 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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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르자브종'이라는 견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낯설면서도 왠지 친숙한 느낌인데, 사실 '시골잡종견'을 재미있게 풀어쓴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믹스견(하이브리드견)'이라고 한다. 2021년 한국반려동물보고서(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인이 많이 기르는 견종으로 말티즈(23.7%), 푸들(19%), 포메라니안(11%)에 이어 믹스견(10.7%)이 4위에 올랐다.

믹스견은 자연 교배로 어떤 견종인지 알 수 없는 경우와 서로 다른 순수 견종의 부모견을 인위적으로 교배시킨 품종으로 나뉜다. 물론 완전한 순종은 거의 없고, 약 90% 이상 새롭게 만들어진 품종이다. 강형욱 훈련사는 전자의 경우 (현재 상황을 파악한 후 훈련하는 게 중요하지만)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다보니 훈련을 위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믹스견인 고민견 아롱(암컷, 6살)이는 보호자와 함께 산 지 1년이 됐다. 기본적인 훈련은 되어 있었다. 보호자는 온전히 책임지게 된 첫 반려견인 아롱이를 완벽하게 키우고 싶어서 방문 훈련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노력이 흔적이 담긴 훈련 일지도 보였다.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롱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다. 산책을 위해 한강변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아롱이는 밖을 무서워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고, 공동 현관을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보호자가 끌어당겨도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간신히 밖으로 데려갔지만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문제는 또 있었다. 아롱이는 실외 배변만 고집하고 있어서 하루에 5~6회 정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저토록 괴로워하니 보호자로서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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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는 제가 풀어주기 전까지 목줄에 묶여만 살던 개였어요." (보호자)


아롱이는 왜 밖을 두려워하는 걸까. 보호자는 아롱이가 시골에서 할머니가 기르던 개라고 설명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아롱이는 늘 1m 목줄에 묶여서 지내야 했다. 산책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늘 주변에 대변이 가득한 곳에서 살았다. 그래서 일까. 바뀐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살던 아롱이에게 도시는 너무도 두려운 곳이었으리라.

계기라고 할 만한 사건도 있었다. 산책을 나갔던 어느 날, 쓰레기 수거하던 폐기물 수집 운반 차량이 작업 중 굉음을 내며 쓰레기 봉투가 터졌고, 그 소리에 아롱이가 발작하듯 놀랐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그날부터 증상이 시작된 게 아닐까 추측했다. 방문 훈련을 통해 아롱이를 도와주려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1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아롱이의 트라우마는 해소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반려문화의 특징은 '넓은 공간에서 묶여 사는 시골 개'라는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개를 집 밖에 두고 목줄을 채워두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재산권에서 비롯된 한국 특유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과거에는 개장수가 많아서 개 보호 차원에서 묶어 기르는 경우가 많았다. 또, 정책적으로 개를 집 밖에 풀어놓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강형욱은 서양에도 개를 묶어 키우는 문화가 잔존해 있다는 설명을 곁들이면서도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는 발전할 접점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서양의 경우 목축업을 중심으로 사람과 개의 공생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으나 한국은 농경 사회이다보니 가축들은 밭에 들어오면 혼이 났다는 것이다. 문화 차이가 만들어낸 반려견에 대한 인식 차이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아롱이에게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강형욱은 본격적인 상담에 나섰다. 한편, 보호자는 아롱이에게 공격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개를 보면 가슴을 부풀리면서 흥분하고 달려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시골에서 토끼나 닭을 사냥했던 경험 때문인 듯싶었다. 강형욱은 '내가 먼저 공격당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서 경계심이라고 분석했다.

강형욱은 보호자에게 앞으로 아롱이를 대할 때 '난 너의 포식성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라는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반려견 앞에서 자신감 있게 걷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령, 보호자가 은연중에 반려견의 보조를 맞춰서 걷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보호자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보호자를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무섭다는 핑계를 자꾸 대요. 너무 오랫동안 결핍된 상태로 있다 보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만 취하는 것에 만족해요. 참는 거 못하고 싫은 데 해야 하는 거 잘 못하고. 아마 밖에서 느꼈던 두려움도 어쩌면 자기가 만들어낸 두려움일 수 있어요." (강형욱)


아롱이는 시골에서 줄에 묶여 살았다. 안쓰러운 일이다. 하지만 규칙을 배워 본 적이 없고 지켜본 적도 없다. 마음대로 못 살았지만 막 살았던 것도 맞다. 자기 조절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묶여 있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강형욱은 아롱이가 기본적인 것에 만족하며 살아 왔다며 어쩌면 밖에서 느꼈던 두려움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형욱은 엘리베이터 투어 훈련으로 첫발을 뗐다. 바로 1층으로 나가지 않고 다른 층에서 내린 후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를 통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걸 인식시켰다. 처음에 아롱이는 내리기를 거부했지만, 훈련이 거듭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두려워하는 대상에 장시간, 집중적으로 노출함으로써 공포를 없애는 치료법(홍수법)은 효과적이었다.


반복 훈련을 통해 1층에서 내리는 데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롱이는 바깥으로 나간다는 걸 눈치채고 방향을 비상계단 쪽으로 틀었따. 강형욱은 목줄을 건네받고 아롱이가 익숙해질 때까지 멈춰섰다.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핵심이었다. 또, 집 밖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쌓는 훈련도 이어졌다. 외부인이 던져주는 간식을 먹게 했고, 스스로 다가가서 먹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아롱이는 조금씩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다. 시골에서 목줄에 묶인 채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만족하며 살았던 아롱이는 도시라고 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만든 규칙을 지키며 자기 조절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부디 아롱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고 보호자와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쌓아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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