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민지영은 왜 시댁의 제사를 책임지고, 혼자라도 산소에 가야 할까?

너의길을가라 2018. 7. 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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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진짜 설거지 못 하게 했어요."

"저희 어머니도요. 어디 가서 고생한다고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했어."

"우리 다 그렇게 컸는데.."


정말이지 세상엔 불합리한 것 투성이다. 살다보면 조금씩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며느리에게 세상은 더욱 불합리하다. '딸'이었던 누군가가 '며느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세계의 변화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며느리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도 막중한데, 응당 아들의 책임이어야 할 일들도 고스란히 며느리의 몫이 된다. 대관절 며느리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들'이었던 누군가가 '사위'가 되면서 겪는 변화는 사실상 없다. 왜 사위는 백년손님이 되고, 며느리는 백년일꾼이 되는 걸까? 이와 같은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자. 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시고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며느리 민지영은 시아버지로부터 뚱딴지 같은 소리를 듣는다. 



"지영이 너는 형균이가 할머니한테 공약을 한 게 있거든.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 때는 조기를 이렇게 큰 놈을 제사상에 놔드려야 해. 그거는 네 책임이지. 쟤가 말뿐이지, 뭐 하겠냐?"


난데없는 제사 이야기. 민지영이 장손인 줄 몰랐던 형균과의 결혼을 두고 농담삼아 사기 결혼이라고 했던 걸 언급한 이후 연달은 공격이다. 좌불안석의 연속이다. 민지영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시아버지는 "제사상에 그런 거 해봐야 소용 없어. 살아계셨을 때 잘해야지"라는 시어머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번에는"꼭 산소에는 가야 해"라고 압박하더니 "같이 못 오면 혼자라도 와!"라고 쐐기를 박는다. 


카메라는 수시로 장손 형균을 비춘다. 아내가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아무런 생각없이 고기에 쌈을 싸먹고 있다. 아주 잘 먹는다. 아내를 도와 참전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문제의식이 없으니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시청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집안 대소사는 여자가 챙겨야 하는 걸까?' 


이 장면은 아침 일찍부터 민지영이 시어머니로부터 '나박김치'를 배우는 장면과 연결된다. 민지영이 열심히 음식을 전수받고 있는 와중에 형균은 깊은 숙면에 빠져있어 도무지 깰 줄을 모른다. 당연히 "형균 씨 거면 형균 씨가 배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지혜)라는 항변이 나오기 마련이다. '왜 음식은 남자 입맛에 맞춰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은 전통적 가부장제의 불합리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요즘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많이 늘어났다. 명절에도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니거나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으로 가족애를 다지는 경우가 많다. 집안마다 사정이 다르고, 가풍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왜 제사를 직접적인 혈연 관계에 있는 자식들이 아니라 며느리가 주가 돼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며느리가 가족의 일원이 됐기 때문에? 그렇다면 자식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애시당초 가족의 일원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가 결혼 후 가족(시댁)의 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서 '딸'들은 결혼 후 친정에선 출가외인이었고, 시댁에선 철저히 외부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가족의 일원이라기보다 오히려 '일꾼'이자 '노예'로 기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토착화된 농경사회를 거쳐 왔다. 남성의 노동력이 중시됐고, 자연스레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정착됐다. 전통적 가부장제 하에 오랜 기간을 살아왔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 채 말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했다. 농경사회의 틀은 해체된 지 오래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다. 남성이 오롯이 경제적 주체로 기능해야 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그렇다면 가정 내의 역할도 달라져야 마땅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여성이 일임했던 구조와 시스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민지영만 해도 연기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며느리가 주도적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든지 '남편이 바쁘면 며느리 혼자라도 산소에 가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은 워낙 구시대적이라 받아들이기 힘들다. 


결국 이 문제는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는 풀리지 않는 문제다. 또, 결혼 후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과도 맞물려 있고, 더 넓게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는 생각이 든다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하고 있는 만점짜리 남편 '제이블랙'을 보고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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