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시사교양

[환경스페셜] 멸치가 없어진다고? 김효진이 전한 바다의 섬뜩한 경고

너의길을가라 2021. 5. 21. 12:43
반응형

"조만간 없어질 고기가 전어하고 멸치."
"90년 넘게 되는 들망(어업)이 위험에 처해 있어요."
"다 오염이 되어가지고."

며칠 전에는 멸치(와 디포리)로 육수를 우려내 어묵탕을 끓여 먹었고, 어제는 밑반찬으로 멸치볶음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멸치는 늘 있는 생선이었다. 어릴 때부터 먹어 왔고, 지금도 먹고 있고, 앞으로도 당연히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안 바다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조만간 없어질 고기로 멸치를 가장 먼저 꼽았다. 정말일까.

20일 방송된 KBS2 <환경스페셜> '멸치가 아니올 리 없다' 편은 연안 바다에서 멸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전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조수간만의 차가 큰 경상남도 남해군 지족해협에는 약 스무 개의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죽방렴은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오래된 어업 방식이다. 5월 죽방렴에 드는 멸치는 봄에 산란한 알에서 부화해 2달 가량 자란 친구들이다.

바다 속에는 약 2만여 종이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멸치는 그 중 개체수가 가장 많다. 멸치 한 마리가 일생 동안 4~5천 개의 알을 낳고, 산란된 알은 하루 이틀 만에 부화해 작은 멸치로 자라 5월부터 멸치 어부들의 일년 양식이 되어 준다. 인간은 군집을 이루는 멸치의 생존방식을 이용해 죽방염 외에도 서른여 가지나 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멸치를 잡아 왔다.

전라남도 여수시 가막만은 여수가 두 팔로 감싸안듯이 에두른 바다이다. 환경 조건이 좋아 예부터 황금 어장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는 '불배잡이'로 멸치를 잡는다. 밤에 서너 척의 배가 합심해 멸치몰이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멸치잡이 방식이다. 그런데 100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멸치를 잡는 선원들은 모두 멸치의 멸종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양이 자꾸 줄어들죠. 옛날 같지 않죠."

선원들은 육지와 인접한 가막만의 상부에서 멸치의 산란을 본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보통 멸치는 수온이 20도 이상 올라가면 산란을 시작한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져도 양식장이 들어선 가막만의 상부 쪽으로는 멸치가 잘 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내만의 갯벌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봤더니 바닥에 홍합 양식줄이 떨어져 누워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홍합을 비롯한 양식 수산물은 바다의 유기물을 흡수해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오염원이 된다. 바다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빈산소수괴'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바닥에 유기물이 많아지면 플랑크톤이 과도하게 증식해 산소를 많이 소비하게 된다. 그리되면 바다 밑바닥에 사는 생물은 물론이고 멸치와 같이 어린 생선들은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오랜 기간 양식을 해온 가막만 바닥은 켜켜이 패류가 쌓여 있었다. 육안으로는 퇴적층의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1m짜리 막대기가 쑥 들어갈 정도였다. 막대기에 묻어 나온 유기물이 검은 물먼지를 냈다. 오염되었다는 얘기다. 이제 가막만에서는 낙지도 살지 않아 4km는 족히 나가야 낙지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몇십년 간 바다에서 산 사람들은 바다의 경고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 득량만의 사정은 가막만과 다르다. 고흥군, 보성군, 장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김 양식으로 유명하다. 득량만 전체 양식 면적의 61%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김은 병충해에 취약해서 김 양식업에는 제한적으로 산이라고 통칭되는 활성처리제를 사용한다. 그런데 13년 전 득량만의 김 양식업자들은 뜻을 모아 이 화학처리제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다.

"무기산을 사용할 때는 어족자원들이, 새조개 등 조개류가 많이 폐사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회진 앞바다에 새조개가 어마어마한 양이 나와요. 김 양식하는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지금으로 봐서는 (무기산을) 쓰고 싶지만 득량만을 어느 정도 살려놨는데 또 우리가 쓰면 그나마도 바다가 죽는다고 해서 꾹 참고 있어요." (황인수 다시마 양식 어민)

산을 사용하지 않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김 생산량이 30%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양식업자들은 끝까지 약속을 지켰고, 결국 양식과 어업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갯벌, 깨끗한 바다를 되찾을 수 있었다. 최상덕 전남대학교 양식생물학과 교수는 그동안 인간은 육지의 관점에서 바다를 이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바다의 관점에서 바다를 지속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가막만으로 돌아가보자. 가막만은 태풍을 막아주는 여러 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양식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천혜의 어장인 셈이다. 그 좋은 조건 탓에 몇몇 오래된 양식장의 퇴적층 문제는 너무 오래 방치됐다. 이동민 전남연안들망 협회장은 가막만을 청소하려면 100억, 200억을 들여도 부족하다면서 자기들이 버렸던 것을 건져내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라고 경고했다.


2020년 기준으로 어업 전체 생산량 중 천해 양식업 생산량은 62.2%에 달한다. 그 중 얼마나 많은 양식장에서 오염 문제가 발생하는지 밝혀진 통계는 없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오염이 발생되어 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바다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욕망과 이익을 취하는 곳이 아니라 후대에 물려줘야 할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연안 정화사업'이 있다. 가막만의 굴 양식업자들은 2년에 한 번씩 굴 양식장 밑바닥을 청소한다. 바다 밑바닥을 그물로 긁는 형망 작업을 통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굴을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한 굴은 판매도 가능해 이익이다. 무엇보다 바닥을 청소하면 산소가 공급돼 바다가 숨을 쉴 수 있게 돼 살아나게 된다. 따라서 어민들이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다.

또, 굴이나 홉합 등 패각류를 키우는 양식장의 중간중간에 다시마 같은 해조류 양식장을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명 바이오 버퍼존(완충 지대)을 만들어 양식 오염원을 줄이는 것이다. 광합성을 하는 해조류는 영양 염류를 훕수해 바다 밑바닥에 과도하게 쌓이는 유기물의 양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산업법에 정해진 양식장 시설 기준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연안 해역은 바다의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곳이라 보면 된다. 신선한 수산물이 우리 밥상에 올라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생산지이기도 하다. 또, 연안 해역의 생태계가 건강해야 먼 바다의 생태계도 건강한 법이다. 따라서 연안 바다에 기대어 사는 양식업과 어업의 현명한 공존이 요구된다. 더 늦기 전에 득량만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MC 김효진은 바다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건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얘기라고 호소했다. 바다가 우리를 포기했다면 고통을 알려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멸치를 식탁에서 볼 수 없는 슬픈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제 바다의 관점에서 바다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