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메카닉: 리크루트>, 무거운 영화에 지친 관객을 위한 탄산 음료 같은 영화

너의길을가라 2016. 9. 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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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killing time) : 시간 죽이기, '불합리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이르는 관용구 (위키백과)


재난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터널>이 24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내달리고 있는 가운데 존재감이 별로 없던 <메카닉: 리크루트>가 깜짝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공포 영화인 <라이트 아웃>이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걸 보면, 한 가지 '흐름'을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9월 2일 하루동안 <터널>은 15,006명, <메카닉: 리크루트>는 59,788명, <라이트 아웃>은 50,484명을 동원했다.)



'관객들은 지쳐있다' 


<부산행>, 7월 20일 

<인천상륙작전>, 7월 27일

<덕혜옹주>, 8월 3일

<터널>, 8월 10일


지난 7월과 8월은 장르별로 다양한 영화들이 연이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본격 좀비물이었던 <부산행>은 영화 내적(內的)으로 '찬사'와 '실망' 사이를 오갔다. 한편, 외적(外的)으로 더욱 뜨거웠던 영화도 있었다.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는 서로 다른 의미의 '국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스크린은 정치적 다툼의 또 다른 싸움터가 됐다. 정치인들은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관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터널>은 '세월호'를 연상케 하며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만하면 지칠 만도 하다. 묵직한 영화들을 소화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감독의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고,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복선들을 찾아내고, 서로 다른 '평가' 사이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이럴 때, 탄산 음료 같은 영화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반전이 있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온몸을 휘감는 여운이 남지도 않는다. 마치 순간의 쾌락처럼 흩어져 버린다. <메카닉: 리크루트>는 쉬어가기 딱 좋은 영화다. 




<메카닉: 리쿠르트>는 2011년 개봉했던 <메카닉>의 속편이다. 제이슨 스태덤이 다시 출연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연결고리는 없다. 어차피 시나리오는 단순하다. 완벽한 살인청부업자인 아서 비숍(제이슨 스태덤)는 과거를 청산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악당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을 터. 크레인은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비숍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나(제시카 알바)를 보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흠뻑 빠지면 지나를 납치해 비숍에게 미션을 수행토록 할 심산이다. 비숍은 이 작전을 눈치채고 있지만, 영화의 진행을 위해(?) 기꺼이 사랑을 시작한다. 함정인 걸 뻔히 알면서도 고작 며칠 만에 죽음마저도 불사할 정도의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실소를 자아내고, 접근에서부터 베드신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유치하다. 사랑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사실 뻔한 전개보다 불만스러운 건, 주인공인 비숍을 그가 원하지 않던 삶(살인청부업자로서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여자친구인 지나가 담당한다는 고리타분한 설정이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죄다 때려 부수고, 사람을 기꺼이 죽인다. 한마디로 새 인생을 살고자 하는 남자의 '장애물' 역할을 여자가 담당하는 셈인데, 이런 설정이 주류 매체에서 매번 반복되는 건 불쾌한 일이다. 그래서 <제이슨 본>이 더 빛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했습니다"로 귀결되는 결말까지, <메카닉: 리쿠르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형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상업적 속성에 적확히 부합한다. 브라질, 태국, 말레이지아, 오스트레일리아, 불가리아 등을 오가는 로케 촬영은 보는 이의 눈을 만족시킨다. 또, 제이슨 스태덤의 '짐승' 같은 몸과 초고층 빌딩에 매달린 채 수행하는 액션은 짜릿함 그 자체다. 그 와중에 제시카 알바는 여전히 아름답다.



<메카틱: 리크루트>는 '킬링타임(그렇다고 영화를 보는 행위를 '불합리하다'고 할 순 없으니, 그저 '시간을 죽이다' 정도로 새기면 좋을 것 같다)'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그 이상의 수식어를 찾기는 어렵다. 우리는 다음 주에 <밀정>과 <고산자, 대동여지도>이라는 묵직한 영화들을 맞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잠시 숨 돌릴 만한 영화가 필요하고, 그 적절한 타이밍에 <메카틱: 리크루트>가 나타난 셈이다. 그나저나 '제이슨 본'과 '아서 비숍' 중 최고의 킬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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