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똑부러지는 며느리 이현승과 달라진 남편 오정태, 반갑고도 쓸씁하다

너의길을가라 2018. 12. 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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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만큼 일방적으로 욕먹는 프로그램도 없을 것이다.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역할은 애초에 존재하는 갈등 양상을 예시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고부 갈등,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그 안에서 '남(의)편'에 머물렀던 남편의 문제 등을 '없던 일'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게 눈 감고 지나가면 없어질 문제이던가? 


한 명의 여성이 '며느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모습, 그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건 '며느리'로 표상되는 가부장제의 부조리가 얼마나 극심한지 잘 보여준다. 물론 중간중간 좀 심하다 싶은 장면들도 있지만, 그 또한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문제들이다. 다들 '우리 가족은 저렇지는 않아.'라고 말하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들어다보면 냉정히 말해 도긴개긴이다. 


최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오정태-백아영, 고창환-시즈카, 이현승-현상 등 세 가족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가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즈카의 시누이의 무례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지만, 이현승은 점차 '똑부러진 며느리'로서 요즘 시대의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오정태는 '달라진 남편'의 기특한 태도로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저는 '꼭 자연분만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저는 제왕절개에 대한 거부감이 없거든요. 주변에 자연분만 하고도 힘들어 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제 몸 상태에 따라서 하고 싶어요."


임신만 하면 여성의 몸은 공공재가 된다. 관심이야 당연할지라도, 간섭은 불편한 일이다. 당연하다는듯 자연분만을 강요하고, 모유 수유를 요구한다. 마치 산모를 위한 것처럼 둘러대지만, 사실 거기에 산모의 안위는 없다. 이미 누구보다 큰 압박을 받고 있을 여성들은 가족들의 집단공격에 죄인이 되고 만다. 이현승은 계속해서 자연분만을 언급하는 시부모와 남편에게 "제 몸 상태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출산 못지 않게 육아 문제도 큰 장애물이다. 당장 누가 키울 것인지를 놓고 현승과 현상은 부딪쳤다. 현상은 "가족의 손에서 키웠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스케줄이 바쁘고, 부모님도 멀리 계셔 아이를 맡아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제야 그가 말하는 '가족'의 의미가 좀더 명쾌해진다. 결국 아내 현승이 일을 쉬면서 육아애 전념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는 모유 수유를 했으면 좋겠다며 압력을 넣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상이 자신의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현승 역시 기상 캐스터로서의 커리어를 단념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자인 현상에겐 육아에 대한 압박이 없었지만, 여자인 현승에겐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승에게 일은 돈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육아는 부부가 공동으로 떠안아야 할 책임이지만,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두 사람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대화를 마쳤다. 



"엄마, 아무튼 우리가 3주를 살 건데, (며느리를) 손님으로 대해줘. "


'못난 남편'이었던 오정태의 변화는 가시적이다. 걸핏하면 아내를 무시했고, 어린 딸들 앞에서 면박을 줬다. 집안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아내의 역할과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식모 부리듯 했다. 오정태는 이를 방관했다. 어쩌면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오정태가 달라졌다. 우선, 집안의 가장 큰 우환이었던 '합가' 문제를 (긴 진통 끝에) 해결하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오정태 가족은 이사 날짜 문제로 3주 동안 한시적으로 같이 지내게 됐다. 그 안에서 수많은 갈등이 야기될 테지만(방송 분량은 확실히 뽑을 것으로 보인다), 오정태가 아내를 위해 분가를 결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 엄마에게 '며느리를 손님으로 대해 달라.'고 못 박았다. 며느리라는 말 속에 담긴 하대의 뉘앙스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를 함부로 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백아영의 입장에선 고맙게 느껴졌으리라. 


또, 평소 거실의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상태였던 그가 집안일을 조금씩 거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짐 정리하는 등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지혜도 그런 오정태의 모습을 보며 "우리 정태 씨가 많이 달라졌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분담의 의미라기보다는 '아내를 돕는다'는 개념이 크고, "요즘 내가 와이프 일을 도와주니까 시도때도 없이 일을 시켜."라며 헛말을 하기도 하지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히는 똑부러진 며느리'와 '아내의 입장을 배려하고 가사일을 분담하는 달라진 남편'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출산 방법과 모유 수유의 기간, 육아 문제에 있어 여성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이현승의 똑부러짐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정태의 변화 역시 이제야 '기본'을 하는 셈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칭찬을 받는 게 현실이다.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변화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다. 또, 지향점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통해 우리가 조금씩 정상화되길 희망한다. 2019년에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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