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두려움과 오만함의 충돌, 질투 그려낸 <상의원>의 묵질한 질문

너의길을가라 2015. 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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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고수, 유인석, 박신혜. 영화 <상의원>은 이른바 꿈의 캐스팅을 완성했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국제시장>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돌풍 속에 스크린 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같은 날 개봉한 <기술자들>에게도 밀린 것은 뼈아팠다. 하지만 단순히 흥행 성적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할 뿐더러 아쉬운 일이다.


"'상의원'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더라고요. 내 것을 지키려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 자릴 지키려 누굴 희생시키고 질투하고 좋아하고 애증을 품는 사람들이요. 끝내 자기 것을 지키려고 뭔가를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런 면이 좋았어요. 이야기에 누가 되지 않게, 충실하게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원석 감독)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관청인 상의원(尙衣院)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조선 최초 궁중의상극을 표방한 만큼 다채로운 한복 등의 의상들이 빚어내는 향연(饗宴)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진다. 순수 제작비 100억여 원 중에서 의상 제작비에만 10억 원이 들어갔을 만큼 제작진은 의상에 매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옷 등 특정한 소재가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의 가장 큰 숙제는 그 소재와 이야기를 얼마나 촘촘하게 바느질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석규, 고수, 유연석, 박신혜라는 신구(新舊)의 조화, 연기파와 대세의 조합 등 꿈의 캐스팅을 완성한 <상의원>이 흥행 싸움에서 밀려버린 것은 아무래도 그 '바느질'에 실패했기 때문은 아닐까?



<상의원>은 '질투'라고 하는 감정이 잘 표현된 영화이다.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은 어침장 조돌석(한석규)과 천재 디자이너인 이공진(고수)이 만들어내는 애증의 관계다. 30년 동안 바느질을 하면서 왕실의 옷을 지어온 어침장 조돌석은 6개월만 지나면 양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왕의 면복이 불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하루 만에 옷을 지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됐고, 이때 궐 밖에서 옷을 만드는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이 등장하게 된다.


평생동안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바느질에 매진하고, 의복과 관련된 궁의 법도와 전통을 따르며 살아왔던 조돌석은 신분의 경계와 세상의 틀을 완전히 허무는 자유분방한 옷을 만들어내는 천재 이공진에게 연민과 우정을 느끼는 동시에 질투의 감정을 갖게 된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르의 관계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자신이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자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과 질투가 만들어낸 파국이 <상의원>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자의 (악의 없는) 오만함은 그 위에서 자유롭게 뛰논다. 진짜 큰 절망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의 초탈(超脫)함 말이다.



<상의원> 조돌석과 이공진의 애증이라는 큰 줄기에 또 하나의 '질투'를 교차시킨다. 바로 왕과 왕비, 그리고 이공진 사이의 묘한 감정을 통해서 말이다.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미천한 출신이라고 하는 열등감을 안고 살아온 왕은 선왕이었던 형에 대한 분노와 함께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똘똘 뭉쳐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왕비마저 형이 선심 쓰듯 내어준 것이라 생각하고 멀리한다. 이공진은 왕비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외로운 궁 생활을 하며 지낸 왕비는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왕을 연기한 유연석과 왕비를 연기한 박신혜는 복잡한 감정들을 잘 포착하면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박신혜는 물이 오른 연기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취했다. 한석규의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나무랄 데 없지만, 최근 연달아 사극에 출연한 것에 대한 피로감은 느껴진다. 한편, 고수는 조각같은 얼굴 안에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내면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닐 것이기에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를 보며 항상 '질투'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때로는 그 정도가 심해져 심각한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 자괴감에 허우적대기도 한다. 아마 <상의원>의 조돌석을 바라보며 감정이입을 하고, 이공진을 바라보며 그리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때로는 열등감이 또 다른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타인과의 비교 없이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하며 사는 것은 좋은 삶일 것이다. "누가 누구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헷갈려 하는 만큼 관객들도 각기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고수의 말처럼 <상의원>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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